1분기 4.4조 적자, 2분기도 적자 탈출 힘들어
수송용 수요 줄어도 화학용 수요는 계속 증가
대규모 화학설비 투자…정부 유동성 지원 필요

에쓰오일의 잔사유 고도화 설비 모습.
에쓰오일의 잔사유 고도화 설비 모습.

“위기는 곧 기회”…정유업계 ‘생존DNA’ 발동

코로나19가 세계 석유시장을 강타한 가운데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정유산업도 피해를 비켜가지 못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총 1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던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유동성 위기까지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격언도 있듯 국내 업계는 화학 등 비정유 사업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유업계의 대규모 투자는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일자리 창출 등 부가적 가치가 높은 만큼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출물량 타격은 적어…“국내 경쟁력 높다는 뜻”

코로나19가 국내 석유시장에 미친 부정적 영향은 수치로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원유 수입이 급격히 떨어졌다. 원유 수입량은 올 1월 9271만배럴에서 5월 7883만배럴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석유제품 생산량도 1억770만배럴에서 9438만배럴로 감소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이동 제한으로 대폭 줄었던 국내 수송연료 소비량은 5월 들어 상당한 회복세를 보였다. 휘발유 소비량은 1월 615만배럴에서 3월 579만배럴까지 감소했다가 4월 658만배럴, 5월 781만배럴로 증가했다. LPG(부탄) 소비량은 1월 430만배럴 3월 289만배럴까지 감소했다가 4월 298만배럴, 5월 343만배럴로 증가했다.

경유 소비량은 1월 1178만배럴에서 3월 1299만배럴, 5월 1570만배럴로 감소 없이 계속 증가했다. 가장 타격이 큰 항공유 소비량은 1월 341만배럴에서 4월 73만배럴까지 떨어졌다가 5월 182만배럴로 다시 증가했다.

정유업계의 석유사업 매출 가운데 수출 비중은 55% 가량으로, 그만큼 수출이 중요하다. 수출물량은 1월 4306만배럴에서 4월 4292만배럴로 약간 감소하다 5월들어 3447만배럴로 급감했다. 이 기간 수출단가(배럴당)는 1월 73.21달러에서 5월 33.96달러로 절반 이상 하락했다. 이로 인해 수출액은 1월 31억5250만달러에서 5월 11억7058만달러로 63% 감소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무적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 시작지역인 중국 수출이 오히려 늘었다는 점이다. 중국 수출물량은 1월 842만배럴에서 5월 1174만배럴로 증가했고, 비중으로는 1월 19.6%에서 5월 34%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국제해사기구의 선박연료유 황함량 감축정책(IMO 2020)에 따라 블렌딩용 경유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수요가 대폭 감소한 상황에서 중국 등으로 수출물량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업계의 경쟁력이 높다는 뜻이다”며 “하반기 정제마진이 개선되면 금방 실적 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투자 끊기지 않도록 투자인센티브 강화 필요”

1분기 국내 정유산업 시작 이래 최악의 실적이 발생했다. 사별 영업적자 규모는 SK이노베이션 1조7752억원, GS칼텍스 1조318억원, 에쓰오일 1조73억원, 현대오일뱅크 5632억원 등 4사 총합 4조3775억원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2분기에도 적자 탈출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면서 1분기의 재고손실이 사라졌지만 정제마진이 마이너스 내지는 제로 상태를 보이고 있어 4사 총합 약 3000억원 가량의 영업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유업계는 2018년부터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국내에만 5조원을 투자하는 등 4사 총합 10조원 가량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던 터라 유동성 위기까지 고조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정유 4사의 유동성 수치인 ‘순차입금의존도’와 ‘순차입금/감가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이 악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순차입금의존도는 총자본에서 차입금 비중을 뜻하고, 순차입금/EBITDA는 영업으로 벌어들인 돈 대비 빌린 돈 규모를 뜻한다.

베이스케이스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의존도는 19.5%→24.5%, 순차입금/EBITDA는 3.1배→9.9배로 증가하고, GS칼텍스의 순차입금의존도는 18.3%→20.2%, 순차입금/EBITDA는 2.3배→5.4배로 증가가 예상된다. 에쓰오일 순차입금의존도는 37.6%→38.1%, 순차입금/EBITDA는 5.9배→16.5배로 증가하고, 현대오일뱅크의 순차입금의존도는 30.1%→38.2%, 순차입금/EBITDA는 3.7배→8.5배로 증가가 예상된다.

베이스케이스 조건은 코로나19가 상반기 이후 진정 국면에 들어가고, 국제유가(두바이유)가 올해 배럴당 35달러·내년 45달러를 기록하며, 정제마진이 올해 배럴당 2달러·내년 3.5달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정유업계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4월 분의 석유수입부과금, 원유수입금, 교통에너지환경세 납부를 유예해줬다. 하지만 2분기에도 영업적자를 벗어나기 힘든 상황인 만큼 세금 납부 유예 연장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일자리 창출 기여에도 한 몫하고 있는 대규모 투자가 중단되지 않도록 투자 인센티브제를 강화하고, 안전·환경 설비 투자 인센티브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래는 화학사…신규 투자 화학 집중

정유업계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국내 정유사업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이유는 향후에도 석유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높게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에경연은 올해 국내 부문별 석유 수요전망에서 수송용과 건물용은 전년대비 각각 5.7%, 1.6% 감소하지만 유일하게 산업용은 0.1%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 사태 완화로 석유화학 원료용 수요가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정보업체 우드맥킨지도 2040년까지 석유 수요가 견고하며,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화학용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대비해 국내 정유업계는 화학사로 변신을 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여수산단에 2022년 가동을 목표로 총 2조7000억원을 투입해 에틸렌 등 기초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복합원료분해설비(MFC)를 건설 중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자회사 현대케미칼(지분 60%)은 대산산단에 총 2조8900억원을 투입해 정유부산물 기반 석유화학 설비인 HP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에쓰오일은 울산산단에 5조원을 투입한 석유화학 1단계 준공에 이어 2024년 가동을 목표로 7조원을 투입하는 석유화학 2단계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는 아니지만 중국, 미국, 유럽에 총 51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1GWh당 1000억원가량의 비용이 수반된다고 볼 때 투자규모는 5조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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