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속도 조절로 발전산업 생태계 유지해야"
명예퇴직·휴업, 정리해고로 이어질까 걱정...회사에 일이 없으면 고용보장 요구에도 한계 있어
신한울 3·4호기 재개로 원전 수출 발판 마련하고 관련 산업 에너지전환 대비할 시간 확보해야

두산중공업 경영정상화를 위한 긴박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국책은행으로 구성된 두산중공업 채권단은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두산중공업 사업구조를 친환경 에너지 위주로 개편하고 대주주 유상증자, 주요 계열사·비핵심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경영정상화 방안을 정부에 전달했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 유상증자를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두산솔루스, 두산타워 등을 매물로 내놓는 등 3조원 이상 규모의 자구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이미 2조4000억원가량을 두산중공업에 긴급 지원한 채권단은 약 1조원 규모의 추가 자금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두산중공업은 최근 두 차례 명예퇴직을 시행하고 약 350명 규모의 인력을 대상으로 휴업에 돌입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발전기자재 산업의 중추를 맡았던 두산중공업이 휘청거리면서 대한민국 발전기자재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달 27일 이성배 전국금속노동조합 두산중공업지회장을 만나 발전기자재 산업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위기 극복방안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두산중공업 명예퇴직, 휴업 현황은 어떤가.

“1·2차 합친 명예퇴직 규모는 900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휴업의 경우 기술직 246명과 사무직 111명을 대상으로 올해 말까지 휴업을 명령했다.

기술직의 경우 공장가동과 상관없이 1960~1962년생을 대상으로 휴업 대상자에 포함됐다. 나이를 특정해 무작위로 휴업을 지시해 현장에서는 정상적인 조업이 불가능한 경우도 생겼다. 부서이동이나 혼용작업 등을 진행하려고 한다.

노동조합은 이를 불법으로 보고 있으며 관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휴업은 일감이 없어 공장의 부하가 떨어졌을 때 일시적으로 시행해야 하는데 현재의 휴업은 개개인의 신분이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불법 휴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룹사 차원에서도 강력한 자구안을 제출했는데.

“회사에서 자구안과 관련한 협의를 요청하거나 통보한 적이 없다. 채권단도 국책은행으로 구성된 만큼 고용에 대한 부분을 신경 써야 함에도 협의 요청 등 교류가 없다.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정확한 내용은 모른 채 관련 내용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을 정도로 노조를 ‘패싱’하고 있다. 노사 간의 신뢰를 무너트리고 있다. 현장이나 직원,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강도 높은 자구안에 인적 구조조정이 포함돼 명예퇴직과 휴업이 정리해고를 포석에 둔 압박용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두산중공업에 악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경영진이 두산중공업의 미래를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있다. 사업에 수반되는 채무를 수주가 이뤄졌을 때 성실하게 갚으면서 가야 하는데 이 수입을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이나 부실계열사 지원 등에 사용하면서 유동성에 위기가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보기에 정부의 에너지전환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다. 경영적인 부분은 우리가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두산중공업이 일감이 없고 노조도 고용과 관련한 주장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회사에 일이 있어야 노조가 정당하게 고용을 요구하고 임금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가 하기로 했던 사업을 갑작스럽게 끊어버려서 현장의 일감이 없어진 상황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하기로 했던 신한울 3·4호기부터 멀게는 천지, 대진까지 2030년까지의 계획이 있었다. 신한울 3·4호기 같은 경우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사전작업 착수 승인을 받아 주기기를 생산하고 있었고 10% 이상 진행된 부분도 있었다. 매출이 나올 수 있는 석탄화력 성능개선공사도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때까지 하려다가 중단됐다.

정부 지원금이 두산중공업이 지금 당장 이행해야 하는 채무인 4조9000억원 규모로 얘기되고 있는데 이는 채무를 연장해주는 수준에 불과하고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금액이다. 수주와 생산활동이 없는데 채무이행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있다.

지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지원밖에 안 된다. 원자력은 신고리 5·6호기 관련 일부 마지막 작업이 오는 12월까지 이뤄지면 원전산업 부하율이 10% 이하로 떨어진다. 선행공정인 주조나 단조는 이미 위기를 맞았다. 원전이나 석탄화력 성능개선이 진행되지 않으면 회사가 기존의 규모를 유지하기 어렵다. 고정비 절감을 위한 고용압박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산업이 정부 정책에 의해 좌우되는 산업이고 채권단도 국책은행이다 보니 내년부터 두산중공업에 일감이 없다는 걸 정부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차입금 규모를 약 5조원으로 치고 이율 5% 적용하면 1년에 2500억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는 얘긴데 두산중공업에 그 정도의 사업 규모가 나오나. 발전산업 생태계 유지해야 하는데 사업은 없고, 민간기업에서는 유지가 불가하면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어질 것이다.

발전산업 생태계 다 무너진다. 그래서 그 부분을 정부가 책임지라는 차원에서 국유화 얘기도 거론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신한울 3·4호기는 재개와 그를 통한 해외수주의 길을 열어주고 화력발전 성능개선공사를 통해 환경규제를 맞추는 등 에너지전환으로 가는 과정을 밟으면 그 사업에서 나오는 재원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가스발전이나 풍력발전 등 현 정부 기조에 맞는 발전설비에서도 두산중공업이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발전산업 차원에서도 지켜져야 할 성과인데.

“두산중공업은 2007년부터 풍력 관련 사업도 진행하고 있고 2013년부터 가스터빈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풍력은 그동안 화력이나 원자력이 차지했던 규모를 따라가기엔 매출이 미흡한 측면이 있다.

가스터빈은 정상적인 매출로 이어지려면 4년 정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 이후에 몇 기 지어지고 나면 데이터와 실력을 확보해 해외에서도 수주할 수 있다. 그때까지 견딜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스터빈에서 정상적인 매출이 확보되는 2024년 이후에는 두산중공업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뜻인가.

“노조에서는 가스터빈만 보고 가기엔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되면 2~3년 더 버틸 수 있지만 그런 단편적인 측면보다는 국내에 설치해야 외국에서 수주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진다.

국내 원자력기술이 좋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영국, 체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많은 국가가 원전을 확대하려고 한다. 신한울 3·4호기를 재개하면 해외수주도 따라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두산중공업도 에너지전환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도산 위기에 처한 경남지역 원전 관련 협력업체가 회생할 수 있는 시그널도 될 수 있다.

원전산업은 몇 년 전까지 효자산업이었고 유능한 인재들이 몰렸다. 이 인재들은 지금까지 정부를 믿고 열심히 연구했는데 정부 정책에 의해 본인들이 사회의 악인 것처럼 됐다. 한국에서는 인적자원이 가장 큰 자원인데 이렇게 되면 이들이 국가에 대한 애착심을 갖겠나. 세계에서도 탐내던 원전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신한울 3·4호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두산중공업이 발전기자재 산업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우선 정부 에너지전환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 같다. 신한울 3·4호기 재개하면 우리 현장에 일감이 돌아온다. 회사도 그런 시그널을 통해 지금처럼 휴업 등 인적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보다는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통해 발생하는 매출로 갚을 것은 갚고 고용도 유지할 수 있는 단계가 필요하다.

현재 유동성 위기 타개를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고용 관련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정부다. 정부의 통 큰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풍력으로 갔다가 5년 뒤에 또 정권이 바뀌면 원전으로 갔다가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정권과 별개로 2년마다 15년 앞을 내다보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정치적 철학이 아닌 과학적인 근거와 객관적인 지표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까지 원자력으로 발전하면서 방사능으로 인한 인명사고는 없었다. 관련 기술도 계속해 보완·진화하고 있다. 원자력은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 않는 안전하고 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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