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케이블 입찰도 정치적 악용...사업자체 훼손 우려

한전이 3월 중 완도~제주 간 넘버(#)3 HVDC 해저케이블 입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번 입찰에 중국 기업의 참여 여부를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 기업의 참여를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한전은 완도~제주 간 (#)3 HVDC(99㎞) 해저케이블 구매 및 설치공사 입찰을 준비 중이다. 문제는 입찰을 국제입찰로 할 것인지, 국내 입찰로 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제입찰에 중국 업체의 참여 여부다.

한전은 아직 입찰과 관련해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사업은 사업비 2300억원에 자재비 700억원 (30%), 설치비(공사비) 1600원(70%)으로 구성됐다. 제주지역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은 물론 전남지역 계통보강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제주지역에서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전력을 육지로 보낼 수 있도록 국내 첫 전압형 HVDC 사업으로 추진된다. 육지와 제주 간에 전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설비다. 문제는 입찰준비 단계부터 불거졌다.

◆케이블 비양허품목, 시공 양허품목… 일괄입찰 시 국제입찰 갈 듯

‘이 사업에서 전체 예산의 30%를 차지하는 해저케이블은 정부조달협정에 따라 시장개방이 제한된 비양허 품목이다. 국제입찰이 가능하지만 국내입찰로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70%에 해당하는 공사는 양허기준금액(235억원 이상)을 초과해 양허품목에 포함된다. 양허품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제입찰 의무가 따른다. 해저케이블은 국내입찰 대상이 되지만 규모가 더 큰 해저케이블 설치공사는 국제입찰을 해야 한다. 문제는 해저케이블 공사에서 자재와 시공을 분리해 발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약 100km에 달하는 해저케이블을 선적해 설치까지 해야 하며 접속 없이 연속 시공을 해야 한다. 또 140m 이상 되는 깊이의 바다에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원인규명이 힘들다. 이 때문에 효율적 사업관리와 적기 준공을 위해 그동안 국내는 물론 해외전력사도 자재·공사 일괄발주를 해왔다.

일괄발주를 할 경우 양허와 비양허 중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양허기준의 경우 의무가 수반되고 일괄입찰에서 설치 공사비가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양허기준에 따라 국제입찰을 해야 한다는 법리적 판단이 우세하다.

국제입찰로 진행해야 국가계약법 위반도 피해갈 수 있다. 국제입찰로 진행될 경우 참여할 수 있는 업체는 국내는 LS전선이 유일하며 해외는 프리즈미안(이탈리아), 넥상스(프랑스), NKT(독일), 스미토모(일본) 등 6개 기업이 대상이 된다.

◆중국 WTO GPA에 가입 안 돼 국제입찰해도 중국 기업 참여 힘들어

문제는 중국 업체의 참여 여부다. 일부 언론과 원자력 국민연대 등 7개 시민단체는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적자가 쌓인 한전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 업체를 입찰에 참여시키기로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중국 업체의 참여는 힘들다.

자재·공사 일괄발주를 할 경우 양허품목에 해당돼 국제입찰을 해야 하는데 중국은 WTO(세계무역기구) GPA(정부조달협정)에 가입을 하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중국 업체의 참여를 결정했다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전에 따르면 입찰준비 과정에서 참여 범위를 두고 국내 업체의 민원이 있어 기재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적이 있고, 자체 기준에 따라 판단하라는 답변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1992년 제주 #1 HVDC를 시작으로 총 4건의 해저케이블 입찰을 실시했다. 국내 제조업체가 없던 #1 HVDC 사업은 프랑스 알카텔이 수주했으며, 2008년 #2 HVDC는 LS전선, 2009년 화원~안좌 구간은 LS전선, 2016년 서남해 해상풍력은 일본 스미토모가 각각 수주했다.

국내 전선업계는 국제입찰 자체를 반대한다. 해저케이블 산업은 자주 발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국사업 보호차원에서 국내입찰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해당 케이블을 제작하는 곳이 LS전선 한 곳이다. 국내입찰을 위해서는 수의계약을 해야 하는데 자재와 시공이 혼합돼 있어 이마저 쉽지 않다.

◆HVDC 해저케이블 입찰에 왜 ‘중국과 탈원전’이 소환됐나

중국과 탈원전은 현재 정부 비판을 위한 최상의 소재가 된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정부 비판의 핵심이 중국인 입국 금지를 못한 정책의 실패로 몰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가 좋은 소재거리가 된 상황에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지 않고 중국 기업에 기간산업을 싼값에 넘긴다는 프레임은 호재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덧칠할 수 있는 것이 탈원전이다.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적자가 쌓인 한전이 전력망사업에 중국 기업이 저가로 참여할 경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완도~제주 간 넘버(#)3 HVDC 해저케이블 입찰 논란은 지난해 초부터 불거진 문제로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간 국내 해저케이블 시장 참여를 둘러싼 치열한 눈치싸움에서 시작됐으며,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이를 정치화했다. 국내 전력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입찰이 국제입찰로 추진돼도 국내 기업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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