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정동욱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2020년은 특별하다. 숫자의 반복이 주는 신비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2020년은 공상과학영화와 소설에도 종종 등장한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0년을 맞아 공상과학소설이 그리는 미래에 대해 기사를 실었다. 미래의 세계는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다. 그 호기심에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학기술에 대한 경외가 들어있다. 공교롭게도 2020년은 공상과학소설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아시모프는 영화 스타워즈에 영감을 준 우주의 대역사를 다룬 ‘파운데이션’과 영화 아이로봇으로도 소개된 로봇 시리즈 등으로 사람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주었다. 아시모프는 원자력을 소개하는 과학 저서 ‘세계 속의 세계 (Worlds Within Worlds)’에서 원자력을 다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인류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며 무궁무진한 에너지는 멋진 신세계를 열 것이라고 까지 했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 사회는 풍요로운 사회이다. 풍요로운 사회의 전제로 물, 식량, 에너지 등 3대 문제의 해결을 꼽는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에너지가 핵심이다. 에너지만 있다면 바닷물에서 담수를 만들어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빛과 열을 이용하여 무한 경작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너지의 발전은 참으로 더디다. 인류는 수천년을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다 20세기 중반에야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찾았다. 원자력 발전의 등장은 과학자는 물론 일반대중도 매료시켰다. 1960년대 원자력발전이 본격 등장했을 때, 미국의 유서 깊은 환경보호단체인 시에라클럽은 드디어 인류는 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류를 에너지 문제에서 해방 시킬 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 여겨진 원자력은 얄궂은 운명도 같이 타고 났는지 잘나간다 싶은 고비마다 악재를 맞아 숨을 죽였다. 미국에서 70년대 폭주하던 원전 주문은 TMI 사고로 차갑게 식고,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는 전세계 원전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후로 400기가 넘는 원전이 무려 25년간 안전 운전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르네상스를 얘기하던 순간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 회의론을 넘어 탈원전이라는 된서리를 맞게까지 했다.

원자력이 이대로 사그라질지 아니면 다시 기회가 있을지는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 인류 생존의 위기라는 기후변화가 원자력에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만으로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세계적인 인식이고 원자력이 그나마 가장 강력한 기후변화의 대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전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는 아직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대에는 원전 선도국은 수명연장의 한계에 달한 원전의 대체여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신규 원전 보유국이 조금씩 늘었다. 이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원전 도입국이 계속 늘어날지 여부도 2020년대에 결정될 것이다. 원자력의 게임체인저인 소형원자로의 성공여부도 향후 10년 사이에 기다리고 있다. 뉴스케일을 필두로 하는 경수로형은 물론 액체금속과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여러 비경수로형 원자로들의 상업화 가능성 여부가 이 10년 내에 가늠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도 단 한번의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영원히 물거품이 될 것이다. 오늘날 원자력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해외는 물론 국내 사례에서도 외부의 비과학적 반대도 있지만 내부의 소홀함도 적지 않았나 한다. 알고 있는 위험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요, 조심하는 자세는 실수도 피해가게 만든다. 원자력의 가장 무서운 적은 자만과 설마이다. 끝없이 공부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사소한 문제도 그냥 넘기지 않는 겸허함만이 원자력을 다시 살릴 수 있다. 탈원전을 극복하기 위해 2020년 오늘의 원자력 종사자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후세의 누군가 묻는다면 오늘 하루도 겸손한 자세로 안전과 국민경제를 위해 맡은 바 사명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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