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송・변전 적격심사 기준 변경…지역 중소업체 불만
업계 “단가제도 취지에 반해” 주장, 시정요구 팽배

정부가 공공공사 입찰에 일자리를 늘린 기업에 실적가점과 별도로 최대 3점의 일자리 가점을 주고 있지만 오히려 입찰제도만 혼탁하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기공사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한전이 ‘2020~2021년 송·변전정비회사 총액공사’ 입찰을 마감한 결과 일자리 가점 3점 때문에 지역 전문업체의 설자리가 좁아져 당초 단가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이 국가와의 계약을 따내기 쉽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이후 국가를 상대로 하는 계약에는 일자리창출실적이 적격심사기준에 들어왔으며 한국전력공사 ‘송·변전정비회사 총액공사 적격심사 기준’도 이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일자리창출 가점은 총 3점으로 6개월 평균 고용인원과 급여가 증가한 기업은 2.5점의 가점을, 손익계산서상 급여가 증가한 기업에는 0.5점의 가점이 부여된다.

입찰 시 당해공사 수행능력(실적) 30점과 가격 70점을 더해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일자리창출 가점 3점은 수행능력 점수에 더해지게 된다. 실적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일자리창출 가점 3점을 받으면 수행능력에서 3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일자리 가점 3점이 없어도 수행능력 3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업체들이 일자리 가점 3점을 타 지역 입찰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단가계약의 경우 해당 지역에서 2년간 긴급공사를 비롯해 설비 유지보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업체에 유리하도록 지역점수 2~3점을 줬다.

하지만 일자리 가점 3점에 여유가 생긴 기업들은 이를 통해 타 지역에서도 1순위 자격을 얻어 입찰에 참여했다.

실적 좋은 메이저 업체들은 일자리 점수와 실적 점수를 합친 점수가 지역점수를 능가하게 되면서 지역의 중소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것이다.

전기공사업계 관계자는 “일자리 점수 3점이 지역 점수 3점을 상쇄해 버릴 뿐만 아니라 공사 실적과 전문자격보유 점수(변전) 때문에 일자리 점수가 만점인 회사는 전국 어디에서도 1순위가 될 수 있어 단가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불법하도급이 자행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 업체가 제주에서도 1순위가 될 수 있는데 이 업체가 직영을 할 수 있겠냐”며 “결국 불법하도급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배전과 달리 변전은 하도급이 쉽지 않으며 철저한 감독으로 하도급을 막겠다”고 말했다.

일자리 가점으로 공사 수행능력에 대한 변별력이 느슨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한전이 전문회사로 운영 중인 변전분야에서 전문회사 자격보유(인력 장비) 가점을 3점에서 4점으로 올린 것도 일부 업체들을 위한 문턱이란 지적도 있다.

변전업계 관계자는 “한전에 등록된 변전업체 170개 중 당해공사 수행능력 3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업체는 30%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다 많은 업체가 입찰에 참여 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배전은 10년간 동종 실적공사 금액이 입찰 예정가격의 1/3만 있으면 만점을 주는 적격심사제도로 돼 있다”며 “송전, 변전도 배전같이 동종 실적공사 점수를 적용해서 많은 기업들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단가는 2년간 크고 작은 공사를 수십 번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 못지 않게 지역성도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단가제도의 취지를 완전히 벗어났으며, 사업을 계속하려면 이사를 가야할 판”이라며 “한전이 일반공사와 차별되는 단가의 특징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입찰에서 송전의 경우도 일부 지역은 이전에는 약 10대 1이었던 경쟁이 변경된 기준으로 인해 400대 1이 됐다. 신설된 동종 실적 점수도 송전은 5년간 사업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0억원에서 25억원, 변전은 30억원에서 40억원 사이를 얻어야만 만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한전 단가공사를 해오지 않은 업체는 만점을 받기 힘든 구조다.

이와 관련 한국전기공사협회 관계자는 “아직 낙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고 있다”며 “결과 분석 후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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