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순천향대학교 IoT보안연구센터 교수
김학용 순천향대학교 IoT보안연구센터 교수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라는 용어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9년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P&G에 근무하던 캐빈 애시턴(Kevin Ashton)은 P&G가 생산해서 유통하던 제품들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캐빈 애시턴의 기대는 아직 보편적인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고객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사물인터넷의 개념이나 기술을 도입한 기업들은 대부분 단순히 인터넷에 연결되는 스마트 디바이스를 제조판매하거나 혹은 이들 사이의 연동 기능을 활용한 자동화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제품이나 서비스들은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하거나 비용을 절감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고객들이 기대했던 것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비용절감 효과도 대단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일부 얼리어답터나 긱(geek)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사물인터넷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려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물인터넷 디바이스나 이들이 제공하는 기능들의 고객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일찍부터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개선하거나 리스크를 관리하고 판매 채널 및 고객 접점을 다양화 하기 위해 디지털 및 ICT 기술을 도입 및 활용해온 기업들은 주목할만한 결실을 얻고 있다.

1999년 당시 적자투성이에 보잘것없는 인터넷 서점이었던 아마존은 ‘디지털 플라이휠’ 전략을 바탕으로 지금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나들고 있으며, 피자업계 만년 2위였던 도미노피자는 ‘도미노스 애니웨어(Domino’s AnyWare)’를 바탕으로 피자헛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또한, 건강보험 분야의 오스카 헬스케어, 주방가전 분야의 토발라, 그리고 운동용품 분야의 펠로톤 같은 스타트업들은 해당 분야의 전통적인 강자들을 긴장시키며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주목할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답이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들은 사물인터넷 디바이스를 기존의 비즈니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으며 기존과는 다른 수익 모델을 도입했던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아마존은 디바이스 시장 진출이 아니라 기존의 전자상거래나 음악, 전자책 같은 디지털 상품의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킨들, 대시 완드, 대시 버튼, 그리고 에코 스피커와 같은 스마트 디바이스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동 주문 기능을 다양한 가전제조사의 제품에 포함시키고 있다.

토발라는 스팀오븐을 이용해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간편식(HMR)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0만원에 달하는 스마트 스팀오븐을 30만원 수준에 보급하고 있으며, 펠로톤은 스핀바이크나 쓰레드밀과 같은 운동용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디바이스와 관련된 온라인 레슨 서비스를 함께 판매함으로써 매출을 키워나가고 있다.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마존은 고객이 따로 주문하지 않더라도 고객의 취향에 맞는 제품들을 매달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프라임 워드로브 같은 선행배송형 큐레이션 서비스를 2017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고객들의 과거 상품 구매 이력은 물론 에코룩과 같은 스마트 디바이스에서 생성된 고객 관련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선도기업들의 사례는 기업들로 하여금 사물인터넷 디바이스를 목적이 아니라 기존 비즈니스를 활성화시키는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디바이스 제조사나 통신서비스 사업자보다는 일반 생활 서비스 사업자가 사물인터넷 디바이스의 보급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디바이스 제조사나 통신사업자들의 사물인터넷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플랫폼 사업자 및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가오는 2020년에는 더 많은 생활 서비스 사업자들이 사물인터넷 디바이스를 활용하고 그로 인해 사물인터넷 산업 생태계에 활기가 가득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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