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전, 내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한전의 농어촌전화(電化)사업으로 우리 마을에 전기가 공급되었다. 누구나 문명의 이기(利器)인 전기를 반겼으며 동네는 잔칫날 분위기였다. 도회지에서나 보던 전기가 들어왔다고 이웃 마을 친구에게 자랑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전기는 경제성장을 이룬 한 축으로 우리는 전기로 인한 산업화의 혜택을 누렸으며, 나는 국가에 공헌한다는 자부심과 신념으로 40여 해를 에너지 분야에서 일했다.

두 번에 걸친 도쿄 근무에서, 나는 전력사업과 관련한 여러 애환을 겪었다. 원전건설 반대 지역주민들을 초청해 일본의 원자력 시설을 견학시켜 드리고 공감대를 넓히려 하였으나, 처음에는 냉랭하여 현황설명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분들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넓히며 오늘의 원전이 건설된 것이다.

또한, 기술 보호를 명목으로 한전의 765kV 송전선로 기술 관련 연수를 거부한 일본 전력회사의 협력관계 단절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들으며, 힘들게 일했다. 지금은 그들보다 앞선 초고압송전선을 운영 중이고, 한전에 운영실태 견학을 요청해 와 고창의 실증단지 등 관련 설비를 보여주며, 큰 보람도 느꼈다.

최근 양국 간 수출규제 갈등을 보면서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도 기술력과 능력에 따른 대우를 받게 되는 진리를 절감한다.

요즘 에너지 업을 둘러싼 화두는 단연 탈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의 축소라는 에너지전환정책의 현실성과 그 정책적 타당성에 관한 논란과 그에 따른 한전 적자 문제의 인과성일 것이다. 콩값보다 싼 두부 이야기는 여러모로 회자 된다. 한전의 원가구조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종갑 사장의 고뇌에 찬 한전 지속가능경영에 관한 인터뷰와 연이은 정부와의 밀 땅 내용이 지면을 장식한다. 윤석철 교수의 기업생존부등식에서 알 수 있듯이 원가절감 등 효율만으로는 커버하기 힘든 가격구조 하에서의 경영은 생존원리에 어긋난다. 원가 이하 값싼 전기요금은 당연히 적자와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남는다. 제대로 된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나은 우리 몫으로 하는 게 순리일 텐데, 몇 포 세대라는 어려움을 겪는 자식 세대에게 이자까지 더 해 전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기는 발전소에서 가정의 전등까지 선으로 연결되어 전달된다. 어려운 생산과 유통을 거쳐 전선으로 연결되니 정전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은 고객에게도 안내된다. 세계 최고품질의 전기를 값싸게 이용하는 것에 익숙해져 순간의 정전도 못 참게 되었지만, 선진국을 막론하고 해외에서 정전을 수시로 경험한 분은 전기의 중요성과 한전의 고마움을 익히 안다.

30년 전 주재원 근무 시, 도쿄 일원의 태풍으로 인한 정전이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정전상황을 빨리 조사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본사로부터 핀잔을 들었는데, 정작 일본 언론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동경전력 친구에게 물으니 자연재해 등으로 정전은 발생할 수 있는데, 왜 보도를 하느냐는 반문이었다. 보도는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을 경우나 한다는 것이었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보도하기 쉬워서 일지 모르나, 오늘도 정전 뉴스는 아주 쉽게 접한다. 미국 뉴욕 대정전 손해배상 사례와 최근 캘리포니아 산불로 서부 최대전력회사 PG&E의 파산신청 관련 내용은 지면 관계상 줄인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선진화된 국민의 의무와 성숙도를 반영해 우리의 전기사용 문화도 바꿔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산물인 한전의 업(業) 개념도 전력사업의 현실과 시대의 화두인 공정의 원칙에 맞게, 한전은 “질 좋은 전기를 제값 받고 공급하고, 고객은 편익에 상응하는 전기값을 내자”가 맞다.

다른 부문은 몰라도, 전기만은 그 짐을 후손에게 떠넘기지 말기를, 평생을 일한 에너지업계에 바란다. 공익성도 필요하지만, 우량한 국민 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과 후손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이것은 필연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