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Biz팀 박정배 기자
에너지Biz팀 박정배 기자

‘엎질러진 물’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뜻을 가진 관용구다. 부적절한 언행을 한 뒤에 이를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을 일컬어 사용한다. 일반적으로는 한 번 내뱉은 말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한 뒤 후회하면서 쓰는 표현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직장 내부에서는 성(性)과 관련한 추문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작정하고 이성 혹은 동성의 신체를 과도하게 범하는 경우 벌어지는 성폭행, ‘은근슬쩍’ 접촉하면서 상대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성추행, 말로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유발하는 성희롱 등은 주워 담기 어렵다. 설령 상황을 수습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오랫동안 트라우마를 안길 수도 있다.

지난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김삼화 의원(바른미래당·비례대표)이 산업통상자원부 소속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8년 자료에 따르면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성희롱과 성추행이 꽤 횡행했다.

지난해 초부터 대한민국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운 ‘미투 운동’을 통해 이 같은 부조리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사건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의 교육이 공사 곳곳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도 좋고 처벌도 좋다. 이를 공론화하는 감사 활동과 언론의 보도 또한 좋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예 처음부터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상하 관계로 형성된 경우 피해자가 죄인이 되고 가해자가 정당성을 부여받는 풍토가 일반적이었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고통을 호소해야 마땅하지만, 내부 질서 혼란을 우려하는 분위기 속에 2차 피해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침묵을 암묵적으로 강요당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공사에 재직하는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공공기관, 공기업만큼 폐쇄적인 직장 환경도 없다”면서 “안정적인 고용 관계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성희롱 정도의 부조리는 조직의 안정을 위해 눈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짐작된다”고 전했다.

조직의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피해자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엎질러진 물’은 결코 다시 담을 수 없다. ‘소 잃기 전 외양간을 고친다’는 원칙으로 개개인이 불필요한 구설수에 연루되지 않는 조직문화가 형성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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