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없이 오직 '식용유' 활용해 LED조명 사용
개도국·선진국 제품 차별화로 연구개발·이윤창출 '가교'
인도네시아 정부 및 살림그룹과 손잡고 현지판매 '잰걸음'

박제환 루미르 대표. (사진=루미르)
박제환 루미르 대표. (사진=루미르)

20대 중반 청년의 인도 여행은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가 됐다. 인도 여행 당시 잦은 정전을 경험하면서 '전기가 없는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램프를 만들어 보자'고 결심한 게 루미르의 출발이었다.

빛을 뜻하는 라틴어 루미(Lumi)와 세상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미르(Mir)를 더한 합성어 '루미르(Lumir)'에서도 그의 의지와 꿈을 엿볼 수 있다.

촛불램프로 수많은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차근차근 연구개발에 매진한 그는, 오직 '식용유'로 LED조명을 켜는 루미르K를 선보이며 빛이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 빛을 선물하고 있다. 지난 11일 박제환 루미르 대표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4년 초 인도 여행 당시 열악한 인프라 탓에 잦은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불을 밝힐 수 있을까 생각하다 촛불램프를 개발했죠. 이 제품으로 공모전에 나가 입상하면서 점차 연구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촛불램프로 전국대학생기술사업화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게 시초였다. 후속 지원으로 필리핀 빈민가를 방문하게 된 박 대표는 개도국의 조명 문제를 체감하고 본격적인 시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애초 창업의 꿈이 없었던 그는 결과론적으로 검증을 해보자는 마음에 미국의 크라우드펀딩인 '킥스타터'에 참여했다. 한 달 만에 50여개국에서 1억6000만원을 모은 그는 이를 기반으로 기존 촛불램프를 넘어 식용유를 사용해 불을 밝히는 LED조명을 개발했다.

그는 "기존 촛불램프는 모든 시장을 공략하기에 어정쩡한 세그먼트 제품이었다"며 "선진국은 디자인과 재질, 개도국은 밝기와 저렴한 가격이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펀딩에 나서며 내세운 공략도 '다시 한 번 저렴한 가격대로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와 목표였다"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기대 이상의 펀딩을 받을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이렇게 만든 루미르K는 오직 식용유로 작동하는 램프다. 온도차로 전기를 생성하는 제백효과, 즉 식용유에 불을 붙이면 생기는 열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열전소자를 활용해 외부전력이나 배터리 없이 LED조명을 켜는 원리를 이용했다.

식용유는 불이 잘 옮겨 붙지 않아 안전한데다 환경오염이 적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조리 후 버려지는 폐식용유를 이용할 수도 있어 연료비도 저렴할 뿐 아니라 촛불 대비 100배가량 밝은 빛을 낸다.

그는 "2017년 인도네시아에서 10개월 동안 필드테스트를 거쳐 지난 하반기부터 판매를 시작했다"며 "현재 4300명이 사용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는 습하고 덥다 보니 음식을 주로 튀겨먹고, 팜오일이 많이 나는 지역이라 식용유를 쉽게 구할 수 있다"며 "식용유 5㎖로 1시간 정도 불을 켤 수 있어 약 1달러로 한 달 내내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네시아를 택한 이유는 또 있다. 섬으로 이뤄진 탓에 전기 인프라 보급 확률이 현저히 낮고 아프리카 국가보다는 동남아시아 국가가 거리나 문화적으로 더 적합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베트남이 GDP는 훨씬 낮지만 전기 보급률은 98%에 달합니다. 인도네시아는 1만8000개 섬으로 이뤄져 전기가 들어가는 지역이 굉장히 적고 보급률도 낮죠. 경제성을 고려할 때 섬 전체에 전기가 보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문제는 '판매망'이었다. 필드테스트 후 현지 판매를 시도했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그렇다 할 성과(레퍼런스)를 내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도네시아에 납품한 제품들은 국내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CSR) 일환으로 수주했다. 또 경기도 수원이 국제교류센터와 1년에 3~4번씩, 200여개 제품을 국제교류를 맺은 도시에 전달하는 등 루미르가 직접 제품을 판매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그는 인도네시아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6개월간 여러 가지 모델을 제안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 재계 2위 그룹인 살림(salim) 그룹과 합작사를 설립하게 됐다. 이 그룹은 인도네시아 내 가장 많은 편의점과 식료품점 등을 보유한 동시에 세계 1위 라면회사로 유명하다.

그는 "살림그룹과 손을 잡게 되면서 투자뿐 아니라 판매 및 유통 채널 확보에도 큰 도움을 받게 됐다"며 "정부 역시 4년간 매년 1만개 이상을 구매해주기로 해 올해 하반기부터는 지금보다는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고 전했다.

루미르는 개도국뿐 아니라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제품도 출시하며 투트랙(two-track)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개도국 대상 제품은 오직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받는 것이라면 선진국 대상 제품은 '이윤창출'이 목적이다.

그는 "선진국 조명은 캐시카우처럼 안정적으로 돈을 번다는 개념이라면 개도국 조명은 언젠가 스타상품이 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며 "개도국 제품은 연구개발비 때문에 마이너스가 나는 상황이지만 현재 양쪽에서 실적을 쌓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서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제품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선진국에는 아름다운 조명을 보급하고, 개도국에는 빛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수혜를 주는 것을 목표로 제품을 개발하고 안정화하는 데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만큼 레퍼런스를 쌓아 더 많은 지역에 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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