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해도 배터리 가치는 재조명
초기 전기차 모델 노후화로 인한 폐차 시기 다가와
회수된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방안 두고 업계 고심

현대차가 지난해 11월 ‘대구 국제 미래 자동차 엑스포’에 참가해 ‘코나 일렉트릭’의 절개차를 전시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11월 ‘대구 국제 미래 자동차 엑스포’에 참가해 ‘코나 일렉트릭’의 절개차를 전시했다.

1세대 전기차 초기 모델이 등장한 지 10여년이 흐르면서 연식이 오래돼 배터리 성능이 저하되고 중고차로서의 가치가 없어지면서 폐차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고 구매한 전기차가 노후화와 사고 등으로 등록 말소 또는 폐차될 경우 해당 지자체에 배터리를 반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배터리다. 차량 가격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 부품이기 때문에 폐차 이후 사후관리·운영에 대해 업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지자체, 자동차 제조사, 한국자동차환경협회, 한국환경공단이 보관중인 폐배터리가 50개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배터리를 민간에게 넘길 수 있는 규정이 없어 국가 소유로만 보관이 가능한 상황이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장은 “전기차 시장이 급증하면서 정부는 물론 자동차 제조사와 관련 업체가 향후 폐배터리 회수 및 재사용·재활용 방안과 대책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며 “전기차에서 배터리를 안전하게 회수하고 다룰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장비 확보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배터리, 재사용이냐 재활용이냐…그것이 문제로다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내구성은 자동차 및 배터리 제조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초기 성능(용량, 출력, 내부저항 등)보다 20~30%가량 감소했다면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500회가량 충전하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만약 전기차 누적 주행거리가 15만km 정도를 기록했다면 배터리를 교체하거나 폐차해야 한다.

전기차 사후에 배터리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업계 의견이 갈린다. 아직 전기차를 폐차하는 사례가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지 않는 데다 재사용 혹은 재활용에 대한 효과, 안전성 등 성능 평가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재사용은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다른 산업에 다시 투입하는 것을, 재활용은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 희귀 금속 물질로 회수해 재제조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배터리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게 아니라면 분해해 재활용하기보다는 이에 앞서 재사용하는 방안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납축전지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성능이 떨어진 후에도 다른 분야로의 이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게 이들의 공통 의견이다.

‘ESS로 이모작을 준비하는 전기차 배터리(박수향, POSRI 이슈리포트 2016)’ 보고서를 보면 7~15년 운행한 전기차의 배터리 초기 용량이 70~80% 수준일 경우 재사용이 가능하며 ESS로 용도 전환하면 추가적으로 10년 이상 더 쓸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폐배터리로 ESS 재사용, 정말 경제성 있나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시장을 주목하고 있지만 사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만큼의 배터리 수량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종사자 대부분이 배터리 재사용 시 가장 쓰임새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는 게 바로 ESS다.

양승무 제주대학교 전기에너지연구센터 박사는 지난달 1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기차 배터리의 미래자원 활용 세미나’에 참석해 ‘전기차 폐배터리를 이용한 ESS의 경제성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양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폐배터리를 이용한 가정용 ESS 설치 사업은 순현재가치(NPV)가 0 이하인 것으로 나타나 경제성이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급속충전기 도입시 폐배터리를 이용해 계약용량을 유지하는 사업, 양어장 비상 발전기 대체용 ESS 사업도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다만 변전실, 전산실 등 납 배터리를 이용한 UPS를 폐배터리로 대체하는 사업은 경제성이 아주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에 ESS 설치를 통한 추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확보 사업 역시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양 박사는 “민감도 분석 결과 풍력 발전에서 폐배터리를 이용한 ESS 설치에 따른 추가 REC 확보 사업은 ESS 연간 운영비가 설치비의 2.2%일 때 REC가 100원일 경우 경제성이 없지만, REC가 80원/kWh인 경우에는 ESS 연간 운영비가 풍력발전시설 설치비의 1.5% 이하일 때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폐배터리 재활용으로 친환경적인 선순환 가능

폐배터리의 전체 재활용 공정은 순환 서플라이 체인 형태로 연결된다. 기존 배터리 재활용 업체 뿐 아니라 주요 자동차 제조사와 소재 업체, 배터리 제조사도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어 핵심 원소재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리사이클 구조를 살펴보면 일단 폐배터리는 원료 물질(금속 소재)로 재생산되고, 이게 다시 이차배터리 중간 제품 제조업체에 공급돼 소재화된다. 이 소재화된 금속 및 화합물은 다시 배터리 제조업체로 공급돼 신품의 배터리로 재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이 활발해지면 폐배터리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다”며 “폐배터리 재활용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구축된다면 전기차 배터리 생산비용의 30~60%를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폐배터리를 친환경적이면서도 안전하게 해체해 재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폭 공간 및 공조, 소방시설 등의 보관시설을 비롯한 안전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독일, 영국, 중국 등 주요국은 제품 생산자에게 폐기물 회수 및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했거나 이를 검토 중이다.

이에 환경부는 지난 2월 ‘2019년도 자연환경정책실 세부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폐기물 처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공공 관리를 강화한다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 전기차 폐배터리, 태양광 폐패널 등 신규 폐자원에 대해 오는 2022년까지 190억원을 들여 ‘미래 폐자원 거점 수거센터’를 구축·운영해 공공 재활용 기반을 마련하고 재활용 기술 개발과 민간 재활용산업 육성을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제주테크노파크가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전기차 배터리 산업화센터’를 마련했다.
제주테크노파크가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전기차 배터리 산업화센터’를 마련했다.

◆전기차 천국 ‘제주도’, 폐배터리의 성지로 변모

우리나라에서 전기차가 가장 활성화된 제주도는 전기차 보급, 충전 인프라 등을 넘어 폐배터리까지 관심을 보이며 온전한 전기차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일단 중소벤처기업부가 다음달 말 발표할 예정인 전기차 규제자유특구로 선정되면 오는 2022년까지 4년간 1288억원(국비 608억원, 지방비 308억원, 민자 384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제주테크노파크(JTP)는 기존 전기차 폐배터리 재사용센터의 공식 명칭을 ‘전기차 배터리 산업화센터’로 결정하고 운영에 나섰다. 오는 2021년부터 1000대 이상의 재사용 배터리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이를 적극 대비하겠다는 각오다.

전기차 배터리 산업화센터는 대지면적 4000㎡, 건축면적 1470㎡, 연면적 2458㎡에 2개 동(검사·적재, 연구) 3층 구조로 지어졌다.

이곳에서 JTP는 폐배터리 회수 및 활용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전지연구조합이 재사용 배터리 등급판정 기준 수립, 국제표준제안, 재사용 응용제품 인증 등을 담당한다.

또 제주대학교가 인력양성과 시제품 검증 지원을, 자동차부품연구원이 배터리 검사 방법 검증을 맡는다. 이외에 대은, 에코파워텍, SK E&S는 시제품 제작·검증을 한다.

JTP 관계자는 “연내 시제품을 제작하고 지속적으로 성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실증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폐배터리 재사용·재활용의 가치와 안전성을 입증하고 향후 상업화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 쓴 배터리도 다시 보자”…현대차, 닛산 등 글로벌 사례 주목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는 전기차 배터리를 재사용·재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닛산은 2010년 스미토모 상사와 함께 ‘4R에너지’라는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전기차 ‘리프’ 1세대용 재활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닛산은 2016년 영국의 전력관리기업인 이튼 에너지와 협력해 가정용 ESS인 ‘X스토리지’를 만들어 팔고 있으며 지난해 3월 후쿠시마현에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재사용하기 위한 공장을 구축하기도 했다.

BMW도 2016년 전기차 ‘i3’의 배터리를 활용한 가정용·상업용 ESS 시장 진출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테슬라와 다임러도 2015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6월 핀란드 에너지 기업인 바르질라와 재활용 배터리 ESS 개발의 가속화 및 사업성 확보 차원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했다. 전기차 재활용 배터리의 잔존가치와 ESS 핵심 기술을 결합해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재활용 배터리 기반의 ESS 신시장을 개척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자동차의 특성상 혹독한 사용 환경을 감안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설계·제작되고 등록된 자산이기 때문에 회수가 수월해 사업화에 적합한 물량 확보가 용이하며 신규 배터리 대비 가격이 낮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하비에르 카바다 바르질라 에너지 부문 대표, 지영조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 부사장, 존 정 그린스미스 에너지 CEO가 지난해 6월 말 ‘재활용 배터리 ESS’ 개발 협력을 맺었다.
(왼쪽부터) 하비에르 카바다 바르질라 에너지 부문 대표, 지영조 현대차그룹 전략기술본부 부사장, 존 정 그린스미스 에너지 CEO가 지난해 6월 말 ‘재활용 배터리 ESS’ 개발 협력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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