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 견인차→처치 곤란 애물단지→친환경 일자리 도시

사북 탄광문화관광촌
사북 탄광문화관광촌

7080세대에게 탄광은 곧 노다지였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석탄·텅스텐 등을 캐냈다. 그 중심에는 강원도 태백이 있었다.

태백은 1960~1970년대 광업의 중심으로서 ‘리즈 시절’을 보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석탄 수요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가을에는 ‘동네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이 당시의 만원은 현재 기준에서는 거의 10만원에 이르는 고액권이었다.

동네 개가 10만원을 물고 다닐 정도였으니 사람의 구매력은 그 이상이었다. 석탄을 본격적으로 캐는 계절에는 다른 지역에서 노동자가 대거 유입됐다.

‘리즈 시절’의 태백은 인구 13만 명의 중견도시 위용을 뽐냈다. 1970년 인구는 10만2255명으로 춘천시(12만517명), 원주시(11만188명)에 이어 강원도 3위를 기록했다. 이때 강릉 인구는 7만2920명으로 영동 지방에서는 태백이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일과가 끝난 후 받은 일당으로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달랬다. 자연스럽게 상업이 발달했다. 현금 유동량이 많아 지역 경기는 상당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석탄의 지위를 석유·가스 등이 대체하면서 태백의 위상은 점차 하락했다. 1980년대 말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해 광산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광부와 그 가족들이 도시를 떠났다. 인구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1981년 삼척 장성읍과 황지읍이 합쳐 태백시로 승격될 당시만 해도 인구는 11만4095명을 기록했다. 10만 대의 인구는 1989년 10만5858명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1990년 8만4559명으로 10만 대가 깨진 후 인구는 급격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불과 5년 후인 1995년 5만9374명을 기록한 뒤 올해 11월 현재 4만4947명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태백 전성기의 상징이던 KBS태백라디오방송국은 강릉KBS와 통합됐다. 태백 영광을 대표했던 라디오방송국 폐쇄를 반대하는 태백시민들은 강경하게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태백 인구 감소는 선거구 획정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제13대 총선 당시 태백시 단일 지역구로 국회의원을 배출했으나 8년 뒤인 제15대 총선에서는 태백시정선군으로 통합됐다. 다시 8년 후인 2004년에는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으로 합쳐진 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는 횡성군이 추가됐다.

강원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태백과 더불어 광업이 흥했던 정선군, 영월군 등도 태백시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중매체에서 ‘가난의 상징’으로 그려질 정도였다.

지난 2008년 방영된 MBC ‘에덴의 동쪽’은 가난한 주인공의 광부 아버지가 사고로 위장된 탄광 폭발로 사망한 뒤 복수에 나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5년 방영된 KBS ‘젊은이의 양지’ 역시 정선군 사북읍의 가난한 남자 주인공이 본인을 위해 헌신한 애인을 배신하고 재벌가 딸과 결혼한 뒤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젊은이의 양지’에서 야심에 눈이 멀어 배신을 감행한 ‘박인범’을 연기한 배우는 이종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에덴의 동쪽’에서는 탄광 사고로 사망한 주인공의 아버지 ‘이기철’ 역할을 맡았다.

이 같은 수모를 겪은 탄광 도시 태백은 그러나 이제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독일 촐페라인 탄광 단지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도시 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일자리 도시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촐페라인은 폐광촌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된 곳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제13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를 열고 태백 등 총 99곳에 대한 ‘2018년도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안’을 의결한 바 있다. ‘에코 잡 시티(Eco Job City) 태백’ 사업이 이 선정안의 중심에 섰다.

이 사업은 태백시와 한국광해관리공단이 손잡고 폐광 시설을 광산테마파크와 스마트팜(농사 기술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지능화된 농장)으로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탄광 부지 85개 건물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한 촐페라인이 공식적인 롤모델이다.

에덴의 동쪽에서 이기철(이종원 분)이 사망한 장면
에덴의 동쪽에서 이기철(이종원 분)이 사망한 장면

태백권(圈)은 석탄산업이 쇠퇴하는 과정에서도 관광 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성공했다. 태백산국립공원과 함께 함백산에 오투리조트가 있다. 서쪽에 인접한 정선군에는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가 있다.

이제 ‘에코 잡 시티 태백’을 통해 탄광도 본격적으로 관광자원의 범주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미 성공사례가 수도권에 존재한다. 1972년 폐광의 길을 걸은 광명동굴은 2010년대 초 관광 명소로 변신, 주말에는 입장객으로 가득한 광명시의 자산이 됐다.

이와 함께 태백시는 지난 4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노지 채소 스마트팜 모델 개발 사업 최종 대상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됐다.

태백시는 “고품질 고랭지배추 수급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모사업 선정을 계기로 스마트농업 분야를 선도하는 지자체의 면모를 발휘, 태백시 고랭지농업의 생산 안전성과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지역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확보와 고랭지배추의 수급 안정에 기여하겠다”고 했다.

총 10개의 농가가 이 공모사업의 혜택을 받을 예정이다. 농가당 2000만원가량의 ICT 장비를 제공한다. 이 장비를 통한 빅데이터로 통합재배관리를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