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입찰 후 돌연 사용중단…개발투자 업체들 ‘도로아미타불’

출하를 앞둔 에폭시절연고장구간차단기(EFI). 본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출하를 앞둔 에폭시절연고장구간차단기(EFI). 본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전이 분산전원용으로 도입한 에폭시절연고장구간차단기(EFI)가 사업타당성 문제로 보급이 중단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한전이 EFI 사용중단을 통보한 이후 약 3개월 동안 후속 조치가 없자 이대로 사업이 폐기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앞서 한전은 100kW 이상 500kW 미만의 저압 분산전원에 신규 EFI를 적용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연간단가 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 9월 한전은 돌연 사업타당성을 이유로 EFI 보급사업을 중단했다.

한전 관계자는 “감사실에서 EFI 관련 사업타당성 여부에 대한 재검토 의견이 전달된 후 지금까지 내부 전문가들과 사업 재추진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결정된 바는 없어 EFI 사업재개 여부는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 기자재를 도입한 후 효용성에 따라 사업지속 여부는 충분히 검토될 수 있고, 이는 기자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한전이 단순히 신규 기자재 도입을 검토하다 사업을 보류한 게 아니라 실제로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연간단가 입찰까지 진행했다는 점이다.

한전은 태양광발전 등 분산전원이 확대되자 이에 따른 대응책으로 저압 고객에 한해 신규 EFI를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분산전원용 EFI를 도입하면서 향후 사업 확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업계에 심어줬다.

그러나 업계와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사업타당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시켜 시장 혼란을 초래했다. 이 같은 사례는 지금까지 한전의 단가입찰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미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나선 업체들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한전의 보급계획을 믿고 연구개발에 뛰어든 업체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도 사업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분산전원용 EFI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사업 중단 소식에 제품제작을 포기했다”며 “시설투자, 인력보강 등에 들어간 비용만 해도 6억원에 이르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다른 업체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거대 수요기관인 한전의 결정을 애써 받아들이며, 체념하는 분위기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0월 한전 국감에서 업체들 간 입찰담합 의혹이 제기되면서 EFI사업은 재추진 동력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한전은 지난 11월 담합의혹에 연루된 업체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이 때문에 공정위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한전이 사업재개를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공정위 조사와는 별개로 한전이 당초 계획대로 EFI 사업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한전의 미숙한 사업추진 과정을 탓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공정위 결과가 나오면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고, 사업은 기대예상 범위 내에서 계속 진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중소기업의 경우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선 수많은 시행착오와 이에 따른 개발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를 보전하기도 전에 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 경영활동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진행한 후 일방적으로 중단하면 앞으로 누가 한전과 발을 맞춰 제품이나 기술개발에 나서겠냐”며 “처음부터 철저하게 사업타당성을 거친 후 신규 기자재를 보급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