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 셰어링’으로 농사와 전력생산 둘 다 가능
패널 작고 좁게 만들어 벼생육에 영향 거의 없어
전력 생산하면 기존보다 농가수익 2~3배 ↑

남동발전은 영농형태양광발전 농장을 조성하면서 농지의 형질에 최대한 영향이 없도록 했다. 콘크리트를 토지에 묻고 그 위에 태양광 패널 지지대를 세우는 방식이 아닌 스크류 기법(나사를 이용)으로 1.8M 깊이에 지지대를 설치한 이유다.
남동발전은 영농형태양광발전 농장을 조성하면서 농지의 형질에 최대한 영향이 없도록 했다. 콘크리트를 토지에 묻고 그 위에 태양광 패널 지지대를 세우는 방식이 아닌 스크류 기법(나사를 이용)으로 1.8M 깊이에 지지대를 설치한 이유다.

태양광 발전과 농사를 병행하는 ‘영농형 태양광 사업’이 농가의 효자로 등극할 수 있을까. 영농형 태양광 사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에너지공기업인 한국남동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나란히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시작하며 신호탄을 쐈다. 일주일 차이로 계통연계를 마친 두 사업은 국내 최초의 영농형 태양광 사업으로 꼽힌다. 이중 남동발전은 시범 사업의 개수를 차근히 늘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경남 고성군에 위치한 남동발전의 영농형 태양광 발전농장을 찾아 영농형 태양광의 미래를 가늠해봤다.

서울에 첫눈이 올 수 있다는 뉴스를 뒤로하고 경남 고성으로 떠난 날이었다. 4시간가량 차를 타고 도착한 고성은 서울만큼 흐렸지만 좀 더 포근했다. 발전소 농장에 도착한 기자 눈앞에 펼쳐진 논은 2000평 규모. 전체 부지에선 보리가 파릇파릇하게 올라와 있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곤 절반의 논 위엔 태양광 설비가 설치됐다는 것 뿐 이었다.

이곳 태양광발전농장 담당자인 강경완 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 가치창조부 부장은 “대조군이 되는 부지를 바로 옆에 놓고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기 위해 절반의 부지에만 100kW의 태양광 설비를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부지를 앞에 놓고 서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탁 트였다’는 것이었다. 태양광 발전 설치물 때문에 시야가 답답할 줄 알았는데, 막혔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생각보다 높이 패널을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강 부장은 “구조물의 높이가 4m에 달한다”고 말했다. 트랙터 등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기구들이 원활하게 드나들기 위해서다.

남동발전이 지난해 조성한 영농형태양광발전 농장에서 직접 벼농사를 짓고 있는 강기석 농민. 팔짱을 낀 포즈를 권하자 수줍게 웃었다.
남동발전이 지난해 조성한 영농형태양광발전 농장에서 직접 벼농사를 짓고 있는 강기석 농민. 팔짱을 낀 포즈를 권하자 수줍게 웃었다.

강경완 부장과 얘기를 나누는 새, 이 부지에서 농사를 직접 짓는 정기석 농민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가왔다. 보리가 잘 자라는지 확인을 하러 온 참이었다. 기자를 발견한 그는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한 부지를 가리키며 “이쪽과 저쪽에 (농사 짓기가) 전혀 다름이 없어”하고 말문을 열었다. “처음엔 뭘 이런 걸 하나 싶었는데 … 해가 하루 종일 움직이면서 그림자도 움직이다 보니까, 벼가 나는 덴 별 상관이 없더라고.”

강 씨가 설명한 것이 남동발전이 천착한 ‘솔라 셰어링(Solar Sharing)’이다. 솔라셰어링은 광포화점의 원리에서 착안한 개념이다. 작물마다 성장을 위한 포화 광합성량이 존재하는데, 하루 일정량 이상의 햇빛을 쬔 작물은 그 이상의 햇빛을 쬐더라도 광합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작물이 생육에 필요한 일조량을 충분히 받은 후 남은 태양광으로 전력을 생산한다는 솔라셰어링은 이렇게 탄생했다.

강경완 부장은 “벼의 포화 광합성량은 50lux로 하루 5시간 정도면 얻을 수 있는 양”이라며 “생육에 필요한 햇빛을 제외한 햇빛으로 전력 생산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론적으로 농사와 전력생산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 만큼, 실제로 이를 증명한 곳이 이곳 시범 농장이다.

강 부장은 “태양광 패널 때문에 생기는 음영을 최소화하기 위해 태양광 패널을 작고 좁게 만들었다”며 “해가 움직이면서 그림자도 움직여 벼의 생육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한 곳의 수확량은 미설치 부지의 85%에 달했다.

올해는 패널이 해를 받는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앙각(仰角) 변화 실험을 했다. 수동으로 패널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해놓았기에 가능한 실험이다. 벼가 집중적으로 자라는 7~8월(생식성장기)에 앙각을 높게 조정해 전력 생산량을 조금 낮추고 대신 벼가 햇빛을 더 많이 받게 했다.

강 부장은 “앙각을 조정해 수확량을 최대로 높이면서 발전량을 조절하는 방식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일사량 센서도 따로 설치했다. 작물에 얼마나 햇빛이 필요한지를 계측하고 성장속도에 맞춰 전력 생산을 더 해도 될지 아닐지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함께 부지를 둘러보던 정기석 농민은 태양광 설비 설치로 수입이 늘었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웃어보였다. 정씨는 남동발전에 발전설비를 설치한 대가로 임대료를 받는다. 임대료와 소정의 연구비를 받는 것을 더하면 농사만 짓던 이전보다 수익원이 훨씬 는다.

정씨는 “지지대가 있는 부분에 약을 치는 것 말고는 (농사 짓기에) 불편한 게 없다”며 “이 동네 뿐 아니라 다른 동네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설명을 부탁하고,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와 얘기를 마친 여든의 노인은 천천히 논으로 걸어가 손으로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파종한지 20여일만에 파릇파릇하게 올라온 보리가 그의 흐뭇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인터뷰)강경완 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 가치창조부 부장

신재생 보급은 농민 수익 증대가 ‘제 1 목표’

최소 20년 수명 갖는만큼 ‘농지법 개정’ 중요

강경완 부장이 영농형 태양광에 대해 알게 된 건 2016년경이다. 당시 본사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하던 그는 일본의 한 매체를 통해 영농형 태양광 설비 사례를 처음 접했다. 이후 이를 우리나라에도 접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농형 태양광 사업의 중점은 ‘농민’에 있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을 통하면 농민의 소득을 3배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쌀값이 십여년 넘게 붙박이인 상황에서 획기적인 수익창출원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은 농민들의 수익 증대를 제 1의 목표로 하면 자연히 따라올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맨 처음 강 부장이 영농형 태양광을 본사 경영진에 설명할 때 붙였던 키워드도 ‘홍익농가’, ‘아버님 댁에 영농형 하나 놔드려야죠’와 같이 농민의 수익을 강조한 것들이었다.

“지금은 설비를 짓는데 드는 비용 등이 농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이 시작된 지금(초기)은 저희와 같은 공기업이 사업의 이로움을 널리 알리면서 농민의 수용성을 높이고, 차후 설비 건설 비용 하락, 관련법 개정 등이 해결되면서 보급도 늘어나겠죠.”

그는 외지인이 아닌 실제 농민이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태양광 난개발, 주민민원으로 잡음이 많은 만큼 영농형 태양광 사업은 철저히 ‘농민’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는게 강 부장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농지법 개정입니다. 태양광 발전시설은 최소 20년의 수명을 갖는 만큼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법의 개정이 필요해요.”

남동발전이 농업과 태양광 발전을 동시에 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농촌보호구역 부지에서 타용도 일시사용허가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타용도 일시사용허가를 받고 사업을 할 경우 최대 8년까지만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 된다.

“농촌보호구역의 일시사용허가 기간을 늘릴 경우 영농형 태양광 사업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을 겁니다. 처음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도입할 때와 달리 주민들의 관심도도 높아지고 관련 지자체에서도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그를 비롯한 삼천포의 가치창조부 직원들은 경남지역 6개 군(함안군, 고성군, 남해군, 하동군, 함양군, 거창군)에 각각 100kW 규모의 영농형 시범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요즈음 각 부지의 인허가 과정을 밟느라 정신이 없다는 그는 “내년 초에는 6개 시범사업이 가동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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