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앙회 ‘남북경협 허브’역할…새로운 활로 모색해야

이재한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은 20대 후반이던 1992년 주차설비업체 한용산업을 설립하고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중소기업 CEO’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기업인이다.

또 국제정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2012년(제19대), 2016년(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구에서 민주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 간판을 달고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덕분에 정치인의 이미지도 강한 인물이다. 이용희 전 국회 부의장을 아버지로 모신 이유도 한몫했다.

이런 그가 ‘중소기업 대통령’으로 불리는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에 도전한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그 자리가 중소기업의 가려운 곳을 정책적으로 긁어주고 이를 위해 정부, 국회, 산업계와의 왕성한 네트워킹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동안 그가 보여준 행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5일 서울 시내 호텔커피숍에서 만난 이 부회장에게 중기중앙회 출마 여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주위의 출마 권유도 많았고 스스로도 나서야 할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해 고민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약 90분간의 인터뷰를 통해 이 부회장은 중기중앙회가 ‘남북경협의 허브’가 돼야 한다는 역할론을 제시하면서 중앙회 산하 수백 개 협동조합이 각각 지니고 있는 애로사항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과 관련된 현 정부의 기업 정책에 대한 개인적 의견, 녹록치 않았던 중소기업 CEO로서의 삶 등을 진솔하면서도 담백하게 풀어냈다. 또 스스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친화력을 장점으로 꼽으면서도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는 점은 단점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진시현 기자jinsh@electimes.com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출마설이 있는데 사실인가.

=주위의 출마 권유가 많기도 하고, 스스로도 나서야 할 적당한 시기가 됐다고 판단해 고민 중이다. 29세의 나이에 주차설비업체를 설립해 지난 30년간 운영 중이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주차설비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7년 최연소로 중기중앙회 부회장으로 3년간 활동했고 2015년부터 또 다시 중앙회 부회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 CEO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외롭고 험난한지 누구보다 속속들이 알고 있다. 국내 경제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침체돼 있는데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경영을 둘러싼 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중앙회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 것으로 안다.

어려운 때일수록 중소기업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갖고 있으면서 건전한 기업 성장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는 역량있는 인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면서 여러 가지 얘기가 나돌고 있는데 알고 있는가.

=전해 듣고 있다. 특히 운영 중인 기업 규모가 작다며 중앙회장 자격 여부를 운운한다고 들었다. 중앙회 소속 협동조합 이사장이 운영하는 기업 중 매출 100억원이 넘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 반문하고 싶다. 매출 규모가 큰 기업을 운영한다고 중앙회장직을 잘 수행한다는 이론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대기업 협력회사에 등록하면 외형을 키울 수 있다. 그럴 기회도 있었지만 ‘갑질’에 휘둘리기 싫어서 선택하지 않았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어떤 철학을 갖춘 기업을 운영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매출 규모나 종사자 수가 크지 않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기업이 꽤 많다. 전문성을 갖고 가치 있는 기업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29세에 설립한 한용산업은 주차설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물류분야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꾸준한 매출 성장을 이뤄나가고 있으며 장기근속자 비중이 높은 탄탄한 회사다. 매출 2조원에 육박하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경우도 봤다. 오래 살아남는 회사가 성공한 회사라는 게 내 가치관적 판단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한 점 부끄럼 없는 CEO라고 자부한다.

20대에 창업해 30년 가까이 중소기업 한용산업을 이끌어왔다. 기업가로서의 행보를 듣고 싶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우연히 일본인 룸메이트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동경 시내 곳곳에 첨단 주차설비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그때 불과 29세였으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게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업계의 권익을 위해 주차설비조합도 설립했고 중앙회와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2012년과 2016년 두 번의 총선 출마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인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그러나 가업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수요처를 찾아다니며 영업활동도 하고, 현장 체크도 하고, 직원도 뽑아야 하고, 금융권에 돈도 빌리러 다녀보고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이루다보니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게 많았다. 나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중소기업 CEO다.

현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에 대해 갑론을박이 상당하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데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달라.

=공약 수립에 참여했기 때문에 점수를 매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정책을 평가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현재의 위기는 내수 침체, 생산성 저하, 대기업 위주 경제시스템에 따른 적정이윤 공유 실패 등 구조적 측면에 기인한 부분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왜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이 같은 정부의 정책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본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상실감과 분노를 이해하고 정책적인 개선을 위한 특단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발표한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이 대상을 중소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속도 조절을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중소기업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할 때 중기중앙회가 바람직한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해 달라.

=현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활로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남북경협이 키를 쥐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중기중앙회가 남북경협의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냐, 진보냐의 이념논쟁을 차치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해빙무드가 무르익고 본격적인 북한과의 경협이 진행된다면 중기중앙회가 적절한 역할을 해야만 하고,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중소기업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만의 연대로는 부족하다. 정부, 국회, 대기업을 포함한 산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해야만 한다. 정책적 비판과 제안을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하므로 관련기관이나 전문가와의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개별 협동조합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수립돼야 한다. 소규모 협동조합은 본인들의 산업을 정부부처 어느 곳에서 담당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회 내부에 종합민원센터를 마련해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나간다면 각각의 산업이 품고 있는 애로사항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력사항>

▲1963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 오산고 ▲세인트존스대학 정치학 학사 ▲롱아일랜드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중앙대 국제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한용산업 대표(1992년 3월~현재) ▲한국주차설비조합 이사장(2004년 3월~현재) ▲국제주차협회 회장(2005년 6월~현재) ▲제19대, 20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지역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중소벤처기업위원장(2017년) ▲건국대 공과대학 특임교수(2018년 4월~현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2018년 4월~현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2007년 3월~2010년 2월, 2015년 3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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