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8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 원자력산업의 세계화에 대해 논의했다.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8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 원자력산업의 세계화에 대해 논의했다.

해외 원전시장은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 첫 해외 원전수출 원전인 UAE 바라카 1호기는 공사완료 후 운영허가를 기다리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조만간 원전 건설 예비사업자(숏리스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전력이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자인 누젠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협상이 진행 중이며, 원전 수출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체코는 신규 원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등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원자력 산업계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8 한국원자력연차대회’에서 ‘원자력산업의 세계화’를 주제로 세션을 진행했다. 이날 사우디·체코·영국 등 원전 발주국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해외 원전시장을 평가하고 국내 원자력 산업의 입지와 수출 경쟁력을 살폈다.

◆하모니 목표…2050년 원전의 전력생산비중 25% 추진

세르게이 고르린 세계원자력협회(WNA) 산업협력본부장은 2050년 전 세계 전력생산량의 25%를 원전이 차지하는 ‘하모니(Hamony) 목표’를 소개했다.

WNA는 한국원자력산업회의와 유사한 조직으로, 전 세계 원자력 산업계를 대표한다. 현재 36개의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요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원전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하모니의 목표설정은 원전이 아직 태양광・풍력 발전보다 경제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고, 이산화탄소 저감에 기여하므로 신규 원전 건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세르게이 본부장은 또 지구온난화를 2℃ 이하로 억제하는 계획을 달성하려면 원전 비중을 17~18% 정도로 늘려야 한다고 내다봤다. 원전비중을 25%까지 증가하려면 원전 1000GW를 추가 건설해야 한다.

세르게이 본부장은 “신규 원전 건설을 통해 연간 30GW를 추가 건설하면 하모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며 “1980년대 신규 원전이 늘어난 선례가 있는 만큼 하모니 목표 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모니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여러 장애물이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 저렴한 천연가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 신규 원전 건설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1차 에너지 솔루션에서 향후 3년 내 원전 3기(4GW)가 전력생산이 중단된다. 또 한국, 벨기에 등은 원전 가동에 관한 정치적 압박이 강하다. 한국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선언했고, 벨기에는 2025년까지 기존 원전의 가동을 중단할 방침이다.

세르게이 본부장은 “뉴욕, 일리노이, 뉴저지 등 주정부를 중심으로 계속 운전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고, 미국 원자력 업계가 원전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프랑스의 경우 최근 마크롱 대통령이 원전에 대한 고무적으로 언급하는 등 아직 비관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英, 원전의 역할 유지

톰 그레이트렉스(Tom Greatrex) 영국 원자력산업협회(NIA) 이사장은 영국 내 원전의 역할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2016년 기준 영국의 전력믹스는 가스(42%), 석탄(9%), 석유(0.5%) 등 화석연료가 51.5%로 절반 넘게 차지한다. 저탄소 에너지원 중 원자력이 21%로 가장 높으며, 풍력 11%, 태양광 3.1%이다.

톰 이사장은 영국 전력믹스에서 원전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가 전력생산의 주요 역할을 맡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풍력발전 설비가 증가했지만, 발전량은 오히려 줄었다. 이는 바람의 양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전력믹스에서 원전 비중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대다수 원전이 해체를 앞두고 있어, 대체설비 마련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헌터스톤 B(Hunterston B)와 힌클리포인트 B(Hinkley Point B)가 2023년, 헤이샴 1호기(Heysham 1)와 하틀리풀(Hartlepool)이 2024년, 던지니스 B(Dungeness B)가 2028년, 헤이샴 2호기(Heysham 2)와 토네스 원전(Torness)이 2030년, 시즈웰 B(Sizewell B)가 2035년 설계수명이 완료된다. 대부분 원전이 설계수명을 한 차례 연장한 바 있어 계속운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톰 이상은 에너지 효율화와 에너지 저장설비 등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등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원전정책에 힘이 실리고 있다고 관측했다.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영국 국민이 원전에 대해 우호적인 점도 고무적이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전원믹스에서 원전의 역할에 호의적인 여론은 65~78%로 나타났으며, 부정적인 인식은 8~13%로 저조했다. 2016년 기준 긍정적인 반응은 72%, 부정적인 반응은 13%였다.

영국은 현재 4개의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힝클리(Hinkley)와 사이즈웰(Sizewell), 누젠(Nugen, 일 도시바가 지분 100% 보유)이 무어사이드(Moorside), 호라이즌(Horizon)은 윌파(Wylfa)와 올드베리(Oldbury), 중국의 대표 원전 국영기업 CNNC는 브래드웰(Bradwell)에 원전 건설 또는 계획 중이다. 이중 무어사이드는 한전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원전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톰 이사장은 “영국 내 원전사업 종사자는 6만4000여명으로 항공우주, 제조업 등과 비견된다”며 원전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민간원자력 사업이 GDP 등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며, 정부정책이 원자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며 “원자력이 영국 경제를 이끄는 동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팀 코리아…세계 원전 시장에서 한국의 역할

한국 원전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팀 코리아’(Team KOREA)로 통한다. 건설, 운영, 정비, 기자재 등 원전산업 전반에 걸쳐 ‘한몸’처럼 산업 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 점이 한국 원전 산업의 경쟁력을 더해준다고 평가받고 있다.

박인식 한국수력원자력 원전수출처장은 “한국 원전 산업체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안전성과 기술력, 한국의 우수한 엔지니어링 등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UAE 바라카 원전수출이 이를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첫 원전수출 사업인 UAE 바라카 프로젝트는 현재 88% 공정이 진행 중이며, 바라카 1·2호기는 96% 진행률을 보고 있다. 바라카 원전의 참조 원전인 신고리 3호기는 올 초 첫 연료주기 동안 무사고 운전을 달성하며 안정성을 증명한 바 있다.

박 처장은 UAE 바라카 프로젝트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전했다. 무슬림들의 금식 성월인 ‘라마단’, 폭염과 모래폭풍 등 문화·지리적으로 국내 건설현장과 다른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이겨내야 했으며, 이를 극복하고 주어진 공기와 예산을 준수했다. 그는 또 UAE 고위 관계자들은 ‘훌륭한 리더십, 헌신적인 모습, 목표를 달성하려는 적극적인 자세’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원전산업의 강점은 계속 건설을 통한 풍부한 경험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세르게이 WNA 산업협력본부장은 “한국의 가장 큰 매력은 지속적으로 원전을 건설해왔다는 점”이라며 “탈원전 정책으로 수입국이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지만, 한국의 ‘계속 건설 이력’을 강조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날 세계 원전 시장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됐다.

전 세계 원전산업계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점점 낮아지고 저렴한 천연가스의 이용률은 높아지며, 복잡한 규제는 원전운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종호 한수원 기술본부장은 “어느 업계든 선도기업을 따라가게 돼 있는데, 현재 원자력계는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며 “한국이 어떻게 업계를 이끄는 지에 따라 세계 원전 산업계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원전 산업은 계속적인 프로젝트 유지, 경험이 풍부한 숙련된 인력 보유, 효율적인 공급망(Supply Chain), 조직체계 유지 등 난제가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원전산업이 어려운 만큼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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