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해소 위한 제도적 장치 필요...대규모 투자비 조달도 관건

27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철도·전기·가스의 남북연계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커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몽골, 한국, 일본의 전력망을 잇는 동북아 슈퍼그리드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슈퍼그리드는 국가 간 대전력 융통을 위해 구축하는 대륙 규모의 광역 전력망으로, 국가 간 전력거래와 신재생에너지 등의 통합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고도화된 전력망이다.

2012년 일본의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 필요성이 본격 제기됐으며, 동북아시아 각국은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시장 선점을 위해 슈퍼그리드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전력계통의 섬인 우리나라는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해 몽골에서 생산한 전기를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동북아 슈퍼그리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북한리스크 등을 이유로 다소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 간 전력연계(슈퍼그리드)의 장점과

국제 동향

국가 간 전력산업 협력은 1901년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자원을 공동 활용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간에 30MW 규모의 수력발전기를 통한 전력계통 연계를 시행한 것이 세계 최초이며, 이후 1929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간의 계통연계가 유럽에서 최초로 시행됐다.

세계 각국의 전력망 연계는 경제성과 계통 신뢰도 향상, 온실가스 감축, 상호 간 에너지 분야 협력 촉진 등을 위해 추진되고 있다. 전력이 남는 국가에서 부족한 국가로 보냄으로써 계통연계 당사자 모두에 이득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단일계통으로 운전할 경우보다 연료비용이 싼 경제적인 전원의 공동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운전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또 계통연계를 통해 전체 계통규모가 증가해서 인접국가 간 계통안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 이러한 국가 간 전력망연계는 2000년대 이후 장거리 초대용량으로 확대되면서 슈퍼그리드(Supergrid)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유럽 슈퍼그리드는 2030년까지 150GW의 해상풍력단지 건설과 해저케이블을 통한 육상으로의 전송을 의미하며, 아프리카 슈퍼그리드는 강과 사막지역에 수력이나 태양광 단지를 건설하고 이를 주변 국가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 때문에 세계적 중전기업체와 조선·해양업체들이 차세대 먹거리로 생각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 필요성과 추진현황

동북아 지역은 국가별 정치체제, 경제력, 산업구조 및 전기요금 등 상당한 차이가 있다. 국가간 전력연계망의 경제성은 기본적으로 전력공급 비용차이에 좌우되며, 이는 국가별 전기요금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전기요금은 토지비용과 고정관리비 등의 일반비용과 전원구성비 차이, 환경정책에 따른 탄소세 등 환경비용, 송배전망비용, 전력시장제도 등에 따라 결정된다. 동북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이 가장 높으며, 한국과 중국은 비슷하고, 러시아는 비교적 저렴하다.

국가별 특징을 보면 러시아와 중국은 자원부국이며, 한국과 일본은 자원빈국이다. 중국과 한국은 전력수요 성장률이 높고, 러시아는 전력이 남는 국가다. 기술력은 일본과 러시아가 우수하고, 한국과 중국은 중간 수준이며, 북한과 몽골은 낮다. 자본력에 있어서는 일본과 중국이 앞서나가는 반면, 우리나라는 중간 수준이고, 러시아는 부족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북미나 유럽지역에 비해 계통연계로 인한 장점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연계선로의 길이가 긴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경제성은 더 높지만, 남북한의 정치적 긴장관계와 국가 간 사회체제 차이 등으로 지금까지 추진이 더뎌져 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과 중국, 한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전력망연계가 의제로 다뤄짐에 따라 한-중, 남한-북한-러시아를 잇는 프로젝트가 검토되고 있다.

현재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나라는 러시아와 일본이다. 러시아 에너지자원개발 회사인 EN+사는 지난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APEC회의에서 시베리아와 극동의 에너지자원을 개발해 한국과 일본 등에 전력을 판매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또 러시아에서 해외전력거래를 전담하는 Inter-Rao UES사도 이미 10여개국과 전력을 수출입하고 있으며, 극동지역에서의 전력수출 확대를 위한 사업전략을 수립 중에 있다.

일본의 경우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원자력을 대신하는 자연에너지원개발과 국가 간 계통 연계로 전력을 거래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1000kV급 HVDC 송전망의 상용화에 성공할 정도로 슈퍼그리드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도 서부지역의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유럽으로 송전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韓 슈퍼그리드 추진계획과 향후 전망

우리 정부는 국가계획인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을 통해 독립계통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시했다.

한­-중-­일, 한­-러 송전망 구축을 통해 극동 시베리아와 몽골 고비사막의 청정에너지(천연가스·풍력)를 동북아 국가가 공동 사용함으로써 전력수급 우려를 해소하고, 동북아 역내 긴장도 완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 수립에 앞서 한전과 전기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은 이미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과 관련한 연구를 추진해 왔으며, 실제적인 사업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 관한 예비타당성 연구를 수행한 결과 국내 계통에서는 계통보강이나 전기품질 등에 문제점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고, 해저케이블 800km를 설치하는 데 5조~7조원 정도의 사업비가 소요되고 회수 기간도 약 11년밖에 안 걸려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전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슈퍼그리드 추진을 위한 사업 환경 분석에 들어갔다. 각국의 정부정책과 재무·인프라·기술 부문의 리스크를 계수화하고, 각 국가의 인센티브도 분석할 방침이다.

또 한-중-일, 한-러(북) 연계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우선 한-중 계통연계를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할 예정이다. 한전이 자체적으로 추진해도 되지만,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은 대규모 투자비 조달이 불가피해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재원조달이 요구되기 때문에 SPC를 설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체적인 향후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르면 2020년쯤 한-중 연계 전력망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게 사실이다. 우선 북한지역 통과, 장거리의 송전선로 경과와 국경 횡단에 따른 해당 국가 간 분쟁을 최소화하는 협력이 필수적이어서 한국과 북한, 러시아, 중국, 일본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국가간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

또 우리나라는 현재 프랑스, 러시아 등에 비해 전문인력이 매우 부족해 그동안 자체 연구 등 검토 업무에 치중했지만, 이제는 국가간 전력연계 전담조직 구성과 전문가 그룹 양성 등이 요구된다. 아울러 동북아 수퍼그리드 사업이 효율적으로 구축되고, 전력계통망을 통합 관리·운영할 수 있는 법제도에 대한 주도권 확보가 필수적이고, 개별 국가의 법률체계가 상이한 만큼 법률체계가 상호간 일치하도록 합의 조정과 제도화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