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직류 전환은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루어질까? 교류보다 직류가 좋다는 주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직류 소식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직류의 사용자 가치와 수요에 관한 특성, 시장전략을 살펴보면 매우 비슷한 사례가 떠오른다. 친환경 자동차다. 직류와 친환경자동차, 이 두 가지 상품이 겪었던 지난 역사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어쩌면 이들의 향후 운명도 비슷할 것이다.

직류와 비슷하게 친환경차(전기자동차)도 태동기부터 강력한 경쟁자를 만났다. 사실 처음에는 둘 다 승리자였다. 여명기의 전력망은 직류였고, 자동차는 전기차였으니까. 1834년에 발명된 미국의 전기자동차는 1900년에는 3만 대가 넘게 운행되고 있었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당시 다임러(벤츠)의 내연기관은 너무 불안해서, 하루 종일을 견디면 엄청난 자랑거리였고 속도는 자전거를 겨우 이기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내연기관차가 전기모터차를 이겼다. 이는 록펠러라는 석유황제가 이룬 자본의 승리였다. 백열전구를 본 록펠러는 조명용 석유 시장이 곧 사라질 것을 확신했다. 등유로 모건과 에디슨, 웨스팅하우스를 막을 수 없음이 분명했다. 석유를 원하는 새로운 수요를 찾지 못한다면, 게츠비가 될 운명이었다.

이때 포드 자동차가 나타났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팔리면 석유는 더 많이 팔릴 것이고, 제국도 번영할 것이다. 록펠러는 전격적이고 전략적인 내연기관 지원을 결정한다. 버리던 가솔린을 상품화하고 엄청난 규모의 주유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오늘날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다. 록펠러의 기대대로 내연기관은 자동차 시장을 완전한 수준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당시 직류에게는 반도체 변환기가 있어야 했고, 전기자동차에는 배터리가 있어야 했으나, 없었다. 직류와 전기자동차 모두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그렇게 100년이 흘렀다.

그러나 화석연료가 초래하는 온실가스, 미세먼지 등의 위해성을 알게 되면서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와 규제자가 친환경 자동차를 원하게 되었다. 일부 소비자는 윤리적 소비로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싶어했다. 1997년에 출시된 도요다 프리우스는 이런 시장의 변화가 만든 성공이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기존 주유소 네트워크를 그대로 이용해서 기존 인프라를 대체하는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규제당국이 친환경 자동차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자 공급자에게 이를 새로운 시장기회로 활용하도록 설득했다. 환경을 중시하는 윤리적 소비자들을 찾아내서 성능과 비용면에서 큰 차별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연기관 대신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는 향후 전력망의 직류 전환을 추진할 때 중요한 사항이다. 직류의 시장확산을 위해서는 기존 인프라와의 충돌이 없는 시장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이제 직류는 100년 넘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완고한 교류 시장을 침투해야 한다. 친환경 자동차가 기존 내연기관 시장에 다시 스며들기 시작한 1997년과 같은 입장인 것이다. 20년 먼저 성공한 친환경자동차를 보면서 직류에게 다음과 같이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첫 째, 공급자를 설득하자.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류가 교류보다 우수하고 싸다고 설득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공급자 설득은 다를 수 있다.

공급자에게 직류의 진정한 가치는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및 풍력발전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직류는 재생발전 친화성이 있다. 재생발전 또한 직류와 친하게 붙는다. 에너지 전환시대의 공급자에게 직류는 곧 비용절감과 이익 증대다. 공급자를 설득하는 일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둘 째, 규제자를 설득하자. 재생에너지 친화력 때문에, 직류는 교류보다 환경적 가치가 높다. 효율이 좋아서도 아니고, 전자파가 적어서도 아니다. 규제자가 느끼는 직류의 힘은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해서 월등히 유리하다는 점에 있다.

셋 째, 기존 인프라와 싸우는 대신 그것을 이용하는 전략을 추진하자.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를 겨누기보다 규제자와 공급부문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 친환경자동차가 ‘환경규제 공격을 받는 내연기관의 방패 역할’을 강조했음을 상기하자. 내연기관과의 단절과 차별화 대신 위기에 처한 내연기관을 돕는다는 공생모델로 환영받는 시장진입을 이룬 것이다.

직류 역시 교류 인프라와 협력하면서 ‘규제받는 공급자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공존공생의 역할을 강조하자. 최근 고압직류송전(HVDC)이 이룬 뚜렷한 성공은 바로 이런 전략으로 해낸 것이다. 교류 인프라와 대결하는 방식으로 추진된 수요부문 직류화(빌딩 직류화)가 아직 지지부진한 것과 대조적이다.

결론적으로 직류화 추진의 승부처는 신재생 발전에 있다. 풍력발전 및 태양광 발전은 모두 직류와 친한 기술이다. 전력망에 연결할 때도 교류방식보다 직류방식일 때 훨씬 편하고 유리하다. 이것이 규제자와 공급자를 직류 쪽에 서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3020 정책 추진이 전력망 직류화 추진을 위한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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