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단위 지질조사결과 토대로 한 후보지 선정
철저한 정보공개 통해 지역주민 설득해 나가야

경주 중저준위방폐장 전경
경주 중저준위방폐장 전경

원전운영의 찬반여부를 떠나 이미 쌓여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의 시급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의 부지선정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하다는 사용후핵연료의 매립장소를 내어줄 지역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 때문에 고준위방폐장 부지선정의 열쇠로 주민수용성을 꼽는다. 하지만 이전 정책처럼 지역지원 등 혜택으로 수용성을 높이는 방법은 고준위방폐장의 경우 유효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안전한 부지선정’과 ‘투명한 정보공개’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패의 역사…고준위방폐장

우리나라 고준위방폐장 부지선정은 한 마디로 실패의 역사다. 1978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후, 고준위방폐장 부지확보를 시도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지난 1986년 정부는 1990년대까지 중저준위방폐장은 물론 고준위방폐장까지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1986년 문헌조사를 통해 경북 울진, 영덕, 영일 등 3개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하고 부지검토에 들어갔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지질조사도 진행하지 못했다. 이후 ▲1990년 안면도 ▲1993년 안면도, 영일군 청하면 등 7곳 ▲1994년 양산, 장안, 울진, 기성 ▲1995년 굴업도 ▲2000년 영광, 고창, 강진, 완도 등 7곳 ▲2001년 울진, 영덕, 고창, 영광 등 4곳 ▲2003년 부안 ▲2005년 울진, 영광 등 10곳, 총 9번 방폐장 부지선정을 추진했지만, 후보지로 오르는 곳마다 반대여론이 들끓으며 모두 실패했다.

◆부안과 경주의 교훈

고준위방폐장을 둘러싼 부지선정 갈등은 지난 2003년 부안에서 절정에 이른다.

2003년 7월 정부가 전북 부안군 위도에 중저준위방폐장 설치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부안지역 주민들은 즉각적으로 방폐장 건립 반대에 나섰다. 주민 소요사태가 발생했고, 방폐장 건립을 찬성한 군수를 폭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또 학생들의 등교거부운동이 벌여지기도 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시위진압에 나선 전경 등과의 충돌까지 일어났다.

결국 정부는 부안군민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부안 지역에 방폐장 건립 철회 결정을 내렸다.

소위 ‘부안사태’는 절차적 투명성과 정당성, 민주적 과정 등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를 교훈삼아 정부는 중저준위방페장과 고준위방폐장을 분리해 건설하기로 하고, 방폐장 건설 전 주민의사 확인과 보상계획 수립 등의 절차를 마련했다.

2005년 3월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됐다. 공모를 통해 유치의사를 보인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지자체 4곳에서 같은 해 11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89.5%로 가장 높은 찬성률이 나온 경주시가 중저준위방폐장을 유치해 지난 2015년 준공을 마쳤다.

경주 방폐장은 정부가 건설계획을 발표한지 30년만에 맺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경주 방폐장은 주민수용성을 최우선으로 삼다보니 부지선정 초부터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경주가 방폐장 부지로 최적의 장소이기에 선정된 것이 아니다. 보상금 등으로 인해 주민수용성이 높았기 때문”이라며 “그 결과 활성단층과 지하수 등 안전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안전한 부지선정’와 ‘투명한 정보공개’

대표적인 기피·혐오시설로 꼽히는 고준위방폐장의 부지선정은 원전분야의 최고난제로 꼽힌다. 중저준위방폐장도 부지선정에 20년, 준공까지 30년이 소요됐다. 상대적 위험도를 고려하면 고준위방폐장을 건설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심지어 건설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끝내 고준위방폐장 부지를 선정하지 못하고, 사용후핵연료가 원전부지에 남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올 정도다.

고준위방폐장을 건설 중인 핀란드와 부지선정을 마친 스웨덴의 경우를 미뤄볼 때, ‘안전한 부지선정’과 ‘투명한 정보공개’가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보인다. 고준위방폐물의 위험성을 감안할 때 인센티브를 통한 주민수용성 확보는 부적합하다. 안전한 부지선정을 최우선으로 삼아 전국단위 지질조사결과를 토대로 후보지를 선정하고, 철저한 정보제공을 통해 지역주민을 설득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만 주민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정보공개 없이 보상금만으로 해결하려는 과거방식은 앞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핀란드와 스웨덴과 같이 가장 안전한 부지를 선정하고, 안전성 평가를 철저히 실시한 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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