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기업들 불만 가중...장기적 계획으로 접근해야

에너지밸리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전이 기업 유치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한 속도전에 나서면서 입주기업들의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인력수급 문제부터 제한경쟁 물량을 놓고 에너지밸리 입주기업과 비입주기업 간 갈등, 갑작스러운 한전의 직접생산 기준 변경까지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에너지밸리를 ‘글로벌 스마트 에너지허브’로 만들겠다는 한전의 구상도 퇴색하고 있다.

에너지밸리 조성사업은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와 인근 지역에 에너지신산업 위주의 기업, 연구소 등을 유치, 산업생태계를 구축해 낙후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한전은 현재까지 238개 기업과 투자협약을 체결했으며, 2020년까지 500개 기업유치를 목표로 지자체와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도시기반 인프라가 미비하고,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한전이 기업유치를 위해 각종 당근책을 내놓으면서 덩달아 문제점도 양산되고 있다.

▲젊은이가 가지 않는다=에너지밸리에 입주한 A사는 최근 울며 겨자먹기로 광주, 목포 등지의 공업고등학교 졸업준비생을 고용했다.

에너지밸리로 내려가느니 ‘차라리 그만 두겠다’는 본사 직원들을 대신하기 위한 조치였다. 공고 졸업준비생들이 그나마 일을 잘해 다행이지만 ‘에너지밸리행’을 거부하는 본사 직원들을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뿐이다.

이처럼 에너지밸리에 본사나 공장을 건립한 기업들은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도시기반 인프라가 덜 갖춰진 탓에 지역 내에서 전문인력 수급이 여의치 않고, 인력을 구한다고 해도 ‘인근 회사에서 월급을 더 많이 준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직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게 에너지밸리의 현실이다.

입찰을 앞두고 급하게 내려가 지역인력을 채용하지 못한 기업은 본사 직원을 웃돈까지 줘가며 데려가는 실정이라 체류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전력량계 업체 관계자는 “지방이고 중소기업이라 전문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다고 아무나 데려다 쓰자니 품질이 걱정”이라면서 “업체들이 늘어나면 인력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입주기업들이 부족한 인력 때문에 한전에서 받은 에너지밸리 제한경쟁 물량을 수도권 본사 공장에서 제조한 뒤 몰래 옮겨 온다거나 A사와 B사가 각각 제조한 전력기자재를 물물 교환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실정이다.

▲입주기업과 비입주기업 간 갈등 ‘꿈틀’=한전이 에너지밸리 입주를 독려하기 위해 지방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 제도를 활용한 것도 업체들 간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은 중소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부(옛 중소기업청)가 고시하는 것으로, 나주혁신산단을 비롯해 나주일반산단, 목포대양산단 등 전국 9개 산업단지가 대상이다.

이 산단에 입주한 기업과는 수의계약(지자체), 제한경쟁(공기업) 등이 가능하며, 법인세·소득세 감면 등의 혜택도 주어진다.

한전은 이 규정에 따라 지난해 고효율변압기(105억원), 파형관(14억원) 등을 제한경쟁으로 구매한바 있으며, 올해는 개폐기, 전력량계 등의 단가입찰에서도 에너지밸리 입주업체들에 최대 20%의 물량을 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컨소시엄 형태로 물량을 수주하는 품목의 경우 에너지밸리 입주기업은 한전의 제한경쟁 물량(20%)을 제외한 나머지 단가입찰 물량 중 배정비율에 따라서도 물량을 받아가 비입주기업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로 인해 모 품목의 경우는 업체들 간 합의를 통해 입주기업의 단가입찰 물량 중 일부를 비입주기업에 양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또 한전이 스마트미터 입찰을 앞두고 직접생산 확인기준(이하 직생기준)을 변경한 것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개정된 직생기준에 따라 자가공장이 아닌 임차공장 소유자도 한전 제한경쟁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에너지밸리에 공장을 지은 입주기업들의 원성은 높아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이 모든 게 한전이 준비 없이 급하게 기업 유치에 나섰기 때문에 불거진 일”이라며 “직생기준 논란은 이제 나주혁신산단 입주기업 전체의 문제로 확대됐고, 풀어야할 숙제”라고 말했다.

▲다양한 지원책 시행하고 있지만=한전은 부족한 인력문제 해결을 위해 관내 대학과 연계해 ‘학점연계 에너지신산업 전문인력 양성과정’, ‘우수기능인력 양성과정’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일자리 드림제도 등을 시행해 에너지밸리 입주기업 근로자의 장기재직을 유도하고 있다.

또 지자체에서도 입주기업의 조기 안착을 위해 버스 노선신설 등 교통인프라 강화와 에너지밸리 기업 임직원 대상 기숙사 임차지원 등 정주여건 개선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한전과 지자체의 이런 노력도 입주기업들의 수요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발맞춰 전남도 지역을 에너지밸리로 육성한다는 한전 계획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지금처럼 기반인프라가 함께 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2020년까지 500개 기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보니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안목으로 시간을 갖고 에너지밸리를 조성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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