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 조건이 이례적 안정기에 들어선 다음에야 급격히 퍼졌다. 10만 년 이상 지속된 최초 간빙기의 고온 기간인 충적세는 경제적·사회적 발달에 더욱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발전이 인간들로 하여금 더 많은 에너지를 추출하고 수적 증가를 가능케 하면서 점차 권력과 물질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57~58쪽)

오스트리아 출신의 역사학자인 발터 샤이델(Walter Scheidel) 스탠퍼드 대학교 인문학부 딕커슨 교수가 쓴 '불평등의 역사'가 국내 번역·출간됐다.

인간이 영원히 풀 수 없는 딜레마인 '불평등', 그 폭력의 역사를 논한 책이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은 평화적인 평등화에 적합하지 않았다. 안정은 다양한 사회와 각기 다른 발전 수준을 망라해 경제적 불평등을 편애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처럼 파라오의 이집트에서도 그랬고,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에서도 그러했다.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소득과 부의 분배를 압박해 빈부 격차를 좁히는 데는 격렬한 충격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예외 없이 가장 강력한 충격으로 인해 발생했다. 4가지 다른 종류의 격렬한 분출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어왔다. 요컨대 대중 동원 전쟁, 변혁적 혁명, 국가 실패 그리고 치명적 대유행병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것들을 '평준화의 네 기사(騎士)'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성경의 4인방처럼 땅에서 평화를 거두고 칼과 굶주림과 흑사병과 들짐승으로 사람들을 죽였다. 이것들은 때로는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때로는 서로 협력하며 현대인에게 흔히 묵시록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결과물을 양산했다. 수억 명이 이것들의 뒤를 따라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사태가 잠잠해질 때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극이 줄어들었다. 가끔은 극적일 정도였다."

억만장자가 몇 명 있어야 세계 인구 절반의 순자산과 맞먹을까. 2015년에는 지구상 최고 부자 62명이 인류의 절반인 하위 35억 명의 개인 순자산을 합친 것만큼 소유했다. 전년도(2014년)에는 그 문턱을 통과하는 데 억만장자 85명이 필요했고, 아울러 그리 오래 전도 아닌 2010년에는 지구상 나머지 절반의 자산을 상쇄하려면 억만장자 388명이 자기의 재원을 모아야 했다.

발터 샤이델은 "평화가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지며, 부와 소득이 더 집중된다"며 "물론 빈부 격차는 국가 간 차이도 있을 수 있고, 한 국가 내에서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평화스러운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진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경제 위기도 결론적으로 말하면 평준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금융 위기는 역효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의 팽창은 평화적인 수단으로서 그럴싸한 후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식 민주주의의 진화가 대중 동원 전쟁과 얽혀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서구 국가들이 20세기 상반기의 특정 시점에서 선거권을 확대한 것은 중요하게도 양차 대전의 충격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만으로 민주화가 그런 국가에서 물질 자원 분배에 평준화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이것이 어떤 과정이든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전쟁의 압력에 의해 촉발됐을 것이다."

저자는 "불평등에 관해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상당히 암울한 상황에 봉착했다"며 "빈부 격차의 실질적 축소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었다. 불평등에 관해서는 암울하게 모든 것을 끝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결국 20세기 후반 이후 지금까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 변화의 배후에 있는 추진 동력은 대압착 이후의 국가 간 관계, 세계 안보의 진화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조미현 옮김, 768쪽, 에코리브르,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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