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사방이 복잡계다. 이미 복잡계(Complex System)는 현재 과학을 점령한 최신 무기다. 복잡계 과학의 대표적 발견인 창발성(Emergence)은 자연과학뿐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가장 강력한 개념이 되었다.

복잡계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명제로 설명된다. 복잡계를 정상학문으로 정립한 세계적 연구소인 산타페 연구소(Santa Fe Institute)는 복잡계를 무수한 요소가 상호 작용해서 창발하는 시스템이라 정의한다. 이때 창발성(Emergence)이란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작용해서 원래 요소들의 합과는 완전히 새로운 특성을 발현하는,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로서의 현상을 말한다.

세계란 그것을 보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복잡계라면, 복잡계 관점에서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령 120년 전 우리는 혈액을 영혼이 담긴 것이자 신성한 것과 악마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1899년 에디슨이 마차 사고로 다쳐 응급수혈 중 사망했다면, 그 책임은 피를 준 자와 받은 자의 신분을 따져 가렸을 것이다. 1900년이 돼서야 우리는 혈액을 혈액형으로 보게 됐다. 수혈의 결과를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관점 하나로 수많은 생명이 다시 사는 삶을 누리게 됐다. 신이 지배하던 이상한 세계도 인간에게 잘 보이는 세계가 됐다.

20세기의 끝 무렵에서 근대과학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들, 소위 복잡한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이런 이상하고 복잡한 현상들은 보기도 어려웠고, 안 봐도 그럭저럭 살만 했다. 드물게 나타나는 복잡계 현상도 이미 알고 있던 과학으로 근사하게 설명할 수 있었고, 그럼 몸과 마음이 편하고 단순해졌다. 그런데 견물생심이다.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복잡한 현상들이 자꾸 삐걱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처럼 안 볼 수가 없으며, 억지로 안 보려고 저항하면 몸과 마음이 불편하고 더 나아가 고단하거나 위험에 빠지게 됐다.

역시 견물생심. 분석과 환원이라는 지금까지의 방법론이 무기력한 이상한 세계가 보이면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이다.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드디어 복잡한 창발 현상을 보게 됐다. 폭발적인 인식확장이 이루어져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창발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경험은 기존에 없던 방법과 해결을 얻을 수 있게 한다. 과거의 주류과학이 어려워하던 문제들도 대부분 쉽게 해결되기 시작했다. 산맥과 마을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넘실대는 화염을 제압하는 맞불놓기, 순록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늑대를 풀어 놓기, 안전한 브레이크와 보호 헬멧이 만드는 더 위험한 결과, 소비자의 도움을 받아 공급비용 줄이기, 생명과 세포의 탄생 등은 잘 알려진 복잡계 과학의 성공 사례다. 더 나아가 구글, 페이스북, SNS,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 사회성, 빅히스토리, 인공지능, 빅데이터, 핀테크, 가상화폐 등도 복잡계 이야기다. 최근 새롭게 나타난 강력하고 매력적인 성공과 실패가 있다면 거의 모두 복잡계와 창발에 대한 것이다.

복잡계 과학은 이제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게 됐다. 수학, 물리학, 사회학, 경제학, 컴퓨터공학, 생물학, 정보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뿐 아니라 인터넷, 사회, 경제, 경영, 생물, 생태계, 전염병, 문헌, 지리, 사이버 공격과 방어, 에너지 체계 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쉽고 강력한 해결을 내놓고 있다. 에너지 문제 또한 복잡계 과학의 대상이며, 어쩌면 맞춤형 짝이다. 에너지 문제 대부분은 물리적 수준의 복잡도를 넘어 정치 사회적 특성이 보다 강력하게 관계하는 엄청난 복잡계 문제다. 에너지 복잡계에는 수많은 상호작용 행위자가 있으며 이들의 행동은 비선형적이어서 단순히 개별요소의 행동을 합해서 결과를 유추할 수 없다. 전체를 통찰로 이해해야만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에너지 관점에는 복잡계도 창발성도 없다. 우리는 에너지 문제를 ‘요소’와 ‘요소들의 합’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또한 에너지 기술, 에너지 경제 경영, 혹은 에너지 R&D 관리 등의 기능 대부분은 근대라는 관점에 머물러 있다. 이들은 기술 관점이 강한 과거의 도구를 가지고 분석하고 합친다. 해왔던 현재와 정해진 미래를 직선으로 연결할 뿐이다.

그러니 난마와 같은 문제를 통찰로 가름하는 역할을 하는 새로운 에너지 전문 연구기관이 새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의 관성을 연장하는 논평류가 아닌,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시작을 이끄는 통찰을 내는 연구기관을 키워내야 한다. 도구적인 기술과 경제 일면을 다루는 기존을 넘어서 정치 사회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다면적인 복잡계 문제까지 다루는 새 틀을 가진 전문역량집단이라면 좋겠다.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선 더 그렇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