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약이 될 수 있을까. 맛과 향 못지않은 효능으로 예부터 사랑받아온 술이 있다. 바로 전북 정읍시에서 주조되는 전통주 ‘죽력고’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죽력고는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술이다. 죽력(竹瀝)은 푸른 대를 구워 뽑아낸 끈끈한 진액을 뜻하는 말로, 이를 소주에 넣은 뒤 푹 ‘고아(膏)’ 약소주로 만든 것이 지금의 죽력고다.

죽력고는 우리 역사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장 처음 소개된 건 1766년 조선후기의 의관 유중림이 쓴 ‘중보사림경제’에서다. 주로 대나무가 많은 지방에서 빚어진 고급 소주로, 중풍으로 신체가 마비될 때 약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효능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조선후기의 학자 매천 황현이 ‘오화기문’에 기술한 바에 따르면,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정봉준 장군은 부상을 입고 죽력고를 찾았다. 한학과 의술에 밝았던 정봉준이 병상에서 찾은 게 이 술이었다는 점은 그 당시 죽력고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구체적인 효능을 살펴보면 ‘동의보감’에선 죽력이 중풍과 구창(입 안이 허는 병증)에 좋고, 눈을 밝히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동의학사전’은 죽력이 인체의 모든 감각기관과 배설기능을 원활히 하고 열을 내리면서 담을 삭히는 데 쓰인다고 적고 있다.

현재 죽력고는 ‘전북 무형문화재 6-3호 전통술 담그기 보유자’로 등재된 송명섭 명인에 의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식품명인(48호)으로 지정된 송 명인은 한국이 현대화된 이후 사라진 죽력고를 되살린 데 이어, 유통을 위한 홈페이지(jukryeokgo.com)를 열어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다.

근래에 들어 전통주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죽력고는 제2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온 가족이 한 데 모이는 추석. 독주(毒酒)보다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죽력고 한 잔을 곁들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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