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품 부적합률 1%대’ 로 떨어졌지만…
솜방망이 처벌로는 언제든 재점화 불보듯

최악의 불황으로 허덕이던 전선업계가 치솟아 오른 구릿값에 힘입어 되살아나고 있다. 주요 원자재 값이 오르면서 전선 가격이 상승했고, 자연적으로 기업 매출과 시장 규모가 늘어나면서‘겉보기에는’불황을 이겨낸 듯 하다. 하지만 사정을 아는 이들은 마치 중병에 걸린 시한부 환자가 산소호흡기로 겨우 연명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전선업계는 수년째 이어진 만성적인 수급 불균형과 극심한 경쟁으로 기업 대부분이 적자에 직면해 있다. 현재의 활황세는 근본 원인에 대한 치료를 배제한 채 상처의 겉만 강제로 봉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가격 외에 승부처가 존재치 않는 시장 질서를 뒤집을 새로운‘경쟁요소’가 필요하다. 그 핵심은 품질, 환경, 안전(QES)’에 달려있다.

본지는 앞으로 4회에 걸쳐 전선산업의 구조를 긴급 진단하고, 우리나라가 전선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제안한다.

전선업계와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이 수년에 걸쳐 추진한 불법·불량전선 퇴출 운동으로 6%가 넘었던 전선 시판품 조사 부적합률이 1% 대로 떨어졌다. 불법·불량 제품이 현격히 줄어들어 전선시장의 질서가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일부 얌체업체들의 불법행위가 암암리에 횡행하고 있다는 것도 외면해선 안 될 사실이다.

무엇보다 전선업계의 총체적 부실상황은 언제든 수면 아래 가라앉은 불법·불량문제가 다시 떠오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실제로 전선조합이 불법·불량전선 근절을 위해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시판품 조사에서도 부적합 제품은 매년 끊이지 않고 적발되고 있다.

전선조합이 시판품 조사를 처음 실시했던 2012년에만 19건의 부적합 제품이 발견됐으며, 2013년에는 15건, 2014년에는 12건의 불법·불량 제품이 적발됐다.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2015년에는 3건, 2016년에는 5건이 발견됐으며, 올해 상반기 2건의 부적합 제품이 적발됐다.

문제는 시판품 조사가 전선조합 회원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2016년 진행된 151건의 시판품 조사 중 134건이 조합사 제품 대상이었으며, 비조합사는 17건에 불과했다. 올해 상반기 진행된 147건의 조사 중 비조합사 대상은 겨우 8건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품질 확보 노력이 부족한 업체들이 많은 비조합원사에 대한 조사를 보다 확대한다면, 현재의 1%대 부적합률은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국가기술표준원이 제품 안전성 조사를 진행해 리콜명령을 내린 태양전선과 지케이전선, 정명케이블, 더보케이블(2개 제품), 유로케이블, 에스케이이전선 중 단 한곳을 제외한 모든 기업들이 비조합원사였다.

적발 제품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친다는 점도 문제다.

전선조합은 부적합 업체에 대해 1회 위반시 경고 조치를, 추가 불법·불량 행위가 드러날 경우 폐기물 부담금 면제제도(자발적 협약)와 연계해 자발적 협약에서 제외함으로써 폐기물 부담금이 늘어나게 한다.

비조합원사에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재 규정인 셈이다. 단속 권한이 없는 민간단체가 업계 자정 차원에서 진행하는 조사라,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정부부처인 국표원 조사의 경우 불법·불량 행위가 적발되면 수거명령과 징역, 벌금, 과태료 등의 처벌을 받지만, 징역형은 고사하고 벌금조차 대부분 최저금액(100만원 이하)이라 불법·불량제품 생산 의지를 꺾기에는 제재 수준이 너무나 미약하다.

이와 관련 전선업계와 제품안전정책 전문가들은 고의적·악의적인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과징금, 위반행위를 완벽히 적발하기 위한 단속수단, 이행강제금, 세무조사 등 보다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선업계 한 관계자는 “전선조합 시판품 조사로 부과하는 페널티가 조합사에 국한된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함께 시판품뿐 아니라 배전시장의 제조사 직납제품과 비조합사의 모든 제품을 검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량전선 제조로 얻는 이득은 처벌을 비웃을 정도로 크다”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해당 업체를 보다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양형 기준을 높이는 한편, 미국 등 선진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과징금을 병행하는 등 보다 부정당한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제재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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