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 속도전 양상으로 흘러 안타까워”
내달 SNS·캠페인 활용해 활동 본격화할 것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행이 본격화되면서 원자력계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학업·취업이 달린 원자력 관련학과 학생들의 불안감은 더 크다. 장기적으로 수만 개의 일자리 감소가 예상되는 탓이다. 또 학계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은 탈원전 기조로 인해 원자력이 도외시될 것이라는 걱정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국 원자력 관련학과 대학생들이 정부 정책과 원자력의 미래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 데 모였다. 전국 13개 대학 관련학과 학생들이 모인‘전국 원자력 대학생 연합’은 지난달 20일 탈원전 비판 기자회견을 연데 이어, 제2, 제3의 행동을 준비 중이다. 관련학과 학생들을 규합해 연합 구축과 운영에 참여해온 이왕현(25,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4·사진) 씨를 만나 정부 정책에 관한 생각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어느덧 사람들이 우리를 ‘리틀 원전 마피아’라고 부릅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대학생이 벌써 밥그릇부터 챙기려고 한다’는 비난도 있더라고요. 요즘 들어 사람들의 시선이 참기 어려울 만큼 따갑습니다.”

전국 원자력 대학생 연합의 이왕현 씨는 “친환경에너지인 원자력 관련 업계에 종사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리틀 원전 마피아’라는 비난을 듣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연합은 경희대학교·서울대학교·조선대학교 등 원자력 관련학과가 설치된 13개 대학 20여명의 학생으로 꾸려졌다.

시작은 단출했다. 지난해 학과 학생회장을 맡았던 이 씨는 학생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단 생각에 각 대학에 연락을 돌렸고, 타 대학 학생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지난달 중순 각 대학의 학생들을 모아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힘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연합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졸속으로 추진 중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정상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바꾸고,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 씨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사례를 보면서 에너지 정책 수립이 속도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에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지만 공학자로서 원자력과 관련해 잘못된 사실이 진실처럼 퍼져나가는 상황에 더는 침묵할 수 없어 용기를 냈다”고 털어놨다.

연합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가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현 상황에 반감을 드러냈다. 발전원별로 장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정책 기조 때문에 유독 원자력에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는 주장이다.

이 씨는 “지금의 신재생 기술로는 정부의 목표치를 달성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공생 할 수도 있는데도, 지금의 정부 정책은 원전을 다 중단하자는 얘기로 들린다”고 비판했다.

현재 신규 건설된 원전들의 운영이 끝나는 시점은 2070년 이후로 예상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탈원전이 이뤄지기까지는 60년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연합이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논하는 현 시점에 활동을 시작한 건 이번에 나올 결과가 향후 원전 정책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과 원자력의 학문적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 씨에 따르면 원자력공학과 학생 10명 중 6명은 대학원행을 택한다. 타 학과보다도 대학원 진학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학과의 특성상 전문성이 확보돼야 취업, 연구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모든 원전의 폐로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원전 해체·방폐물 처리 등을 다루는 원전 후행주기 분야가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연합은 이러한 변화가 원자력 학문의 폭을 좁힐까봐 우려하고 있다.

이 씨는 “학생들끼리는 원자력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판단하면, 지금이 (관련 업계로) 취직하기엔 적기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처럼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는 친구들은 원자력의 학문적 가치마저 저평가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이 씨를 비롯한 연합의 학생들은 체념한 채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학생’ 신분인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일지 고민 중이다. 내달 14일에는 13개 대학 학생들이 두 번째로 모여 연합의 향후 운영 방안을 논의한다. 1인 시위, SNS 활용 등을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이 씨는 “카드뉴스를 제작해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캠페인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지우는 활동을 할 계획”이라며 “기술·이론 등 전문적인 영역보다는 학생들만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내외적인 활동들도 학생들의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는 듯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이 씨가 던진 마지막 말에선 학생들의 절박한 심경을 그대로 묻어났다.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학생들 모두가 불안해합니다. 어제도 후배 한명이 물었어요, ‘전과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저도 답답합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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