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한국전기공사협회 건축전기설비위원회 위원장
김경미 한국전기공사협회 건축전기설비위원회 위원장

코 끝을 알싸하게 자극하는 묵향이 내 삶의 일부로 들어온지 4년의 시간이 돼간다. 처음에는 친구의 SNS에 올라오는 소당 김연익 선생님의 채본을 보면서 ‘멋있다! 나도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나를 문인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기라는 세상으로 도전한 이후 나와 함께 할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전이었다.

벼루하나, 먹하나, 붓하나를 준비하면서 많이 들떴었고 금방이라도 멋들어진 작품하나 벽에 걸어놓을 수 있을것 같았다. 먹이 벼루에 갈리는 잔잔한 소리와 먹의 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내 공간에 가득해지는 즐거움을 알았고, 그 이후로는 행복한 고생의 시작이란걸 알지 못했다.

문인화.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이었다. 문인화하면 사군자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나 또한 그랬다. 그저 사군자를 멋지게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문인화는 그리 단순한것이 아니었다. 벽에 걸린 나의 그럴싸한 작품은 수많은 시간을 공부로 채운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문인화는 동양전통의 회화 장르로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생긴 모습을 작가의 생각과 정서에 따라 느낌을 강조해 그린 그림이다. 시나 서예와 밀접하게 연관돼 발전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후기에 많은 발전을 이뤘다.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인생에 대한 철학과 자연에 대한 섭리를 깨달아 인격과 교양이 갖춰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림을 통해 그 격조가 우러나온다고 보았다고 할 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문인화를 처음 접한 것은 난(蘭)이다. 초보자가 붓의 이런저런 쓰임을 배우기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었다. 채본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붓은 화선지위에서 똑바로 좌로 눕고 우로 기울어지면서 그야말로 날렵하고 멋진 선을 눈앞에 펼쳐보이는데, 내 붓이 지나간 자리는 선생님의 것과는 전혀 다른 뭉뚝한 선만이 지나고 있었다.

난의 촉을 연습하는 연습지가 한장 두장 쌓여갈수록 나의 붓도 조금은 내가 마음먹은대로 움직여주는 듯 했고 내가 보기에 조금은 그럴듯하게 선생님의 채본을 닮아가는 듯 했다. 역시 연습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난(蘭)을 시작으로 죽(竹)과 국(菊)을 공부하고 이제는 매(梅)를 막 시작했다.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우면서도 새로운 세계에 눈도 틔워주었다. 그저 스치듯 지나면서 ‘예쁘다, 색이 참 곱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멋있다’등의 수식어로 표현했던 세상들이 다르게 보이고 관찰하게 만들었다. 꽃이 피어있는 방향이 다르니 이런 표정이구나, 뭉쳐있고 흩어져있을 때는 이런 느낌이구나 등등. 또한 묵향 가득한 공간에 나를 놓아둠은 지금껏 내가 속한 세상과의 분리를 통해 나를 비우고 사색하게 하고 다시 나를 채우게 하는 것 같다.

화실에서 소당 김연익 선생님의 지도아래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는 성장하고 있다. 나의 새로운 도전, 문인화가 내 삶의 일부로 자리잡을 때까지. 그리고, 아직은 많은 공부를 통해 선생님의 작품을 닮아가고 있는 중이다. 조금 더 성숙해져서 나의 세계를 담은 창의적인 나만의 작품이 내 눈앞에 펼쳐질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묵향에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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