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면 숭실대 교수
황일면 숭실대 교수

오랜만에 운동을 갑작스럽고 과하게 한 탓인지 팔다리와 허리에 통증이 있어 한의원에 갔다.

원장선생님은 진맥후에 척추교정과 부항, 봉침요법 등을 시행했는데, 이 모든 것이 기혈을 제대로 잘 통하게 하기 위한 조처들이었다. 며칠만에 불편함이 사라지고 통증이 없는 가뿐한 몸이 되었다. 기혈이 잘 통하게 된 결과일 터다. 우리의 몸속혈관의 길이가 동맥, 정맥 및 모세혈관을 합하여 16만km나 된다고 한다. 이 수송망을 타고 하루에 1천번이상의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질 때 오장육부와 근육과 신경들이 제기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모세혈관들이 막히며 피가 통하지 않게 되면 곳곳에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인간의 육체적 건강은 혈액이 잘 통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혈액이 통해야 산다.

인간관계에서도 소통이 이루어져야 관계가 살아난다. 소통이란 말 그대로 서로 나누는 말이 통한다는 말이다. 말이 통해야 일의 진척이 이루어지고 조직이 건강해지고 관계가 튼튼해 진다.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상하 동료관계에서 막혔다는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같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한쪽만이 아닌 당사자들 모두가 아픔을 느끼게 된다. 부부사이, 부모와 자녀사이에서 소통이 되지 않아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소통되지 않는 사이에선 ‘도대체 말이 통해야 말이지. 절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아’라는 표현들을 한다. 막힌 담과 절벽이 허물어지고 양 방향 소통의 신(神)이라 불리는 에릭 번(Eric bern)이 말하는 긍정적인 스토로크가 이루어져야 관계가 성립되고 회복된다.

이러한 인간관계에도 한의학 원전인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에 나온다는 통즉불통(通卽不痛) 불통즉통(不通卽痛)이 적용된다. 즉,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말이다. 소통이 이루어져야 아프지 않고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아프다.

우리 사회에서 작년과 올해 전반기에 걸쳐 겪었던 혼란과 고통은 불통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새로이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는 막걸리를 나누며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했으며, 대통령은 집무장소를 옮기고 참모진을 포함하여 국민들과 격의없는 소통을 하겠다고 말했다. 실제적인 모습과 결과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확대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를 “great chemistry"라고 표현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케미스트리’(chemistry;궁합,공감대)가 매우 좋다는 뜻이다. 두 정상의 인간미와 성향의 화학적 조합이 매우 좋다는 표현이니, 실제로 그런 것이라면 두 정상간에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이어서 한미동맹이 단단해지고 두 국가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져서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기와 혈의 관계를 물과 바람의 관계로 비유하여, 바람이 물살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기가 혈을 움직이게 하는 모습이 있다고 한다. 기가 돌면 혈도 돌고, 기가 멈추면 혈도 멈춘다는 것이다. 필자가 수련해 온 ‘국선도’라는 우리민족고유의 수련법에는 ‘기혈순환유통법(氣血循環流通法)’이란 게 있다. 호흡을 통해 축적된 기운을 오장육부로 보내 순환시키는 운동법이다. 인체의 기(氣)는 말 그대로 숨과 직결되는 것인데, 호흡과 행동을 통해 얻어진 기운을 각 신체부위에 호흡과 동작을 통하여 순환시키고 활발하게 하는 것이다. 현대 서양의술에서는 기(氣)에 대한 불인정 또는 논란이 있지만, 한의학 이론이나 동양철학 학문의 관점에서 기혈을 순환시키는 내용을 살펴보면, 혈보다 기를 먼저 고르게 하는 것이 우선시 되고, 혈을 조절하는 것은 그 다음에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 막연히 통하도록 해야 된다는 주장만 하기보다는, 막힌 곳을 뚫어주고 끌어주고 당겨주는 기(氣)에너지를 고르게 해야한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기를 먼저 고르게 해야 한다. 기를 먼저 고르게 해야 한다는 것은 분위기, 제도, 진실한 마음과 뜻, 방향과 틀을 잡아가야 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통을 잘 하자고만 하지 말고 소통의 분위기를 띄우고 더욱 소통이 잘 될 수 있는 제도와 형식을 마련하고 소통을 원하는 진실한 마음과 뜻을 담아 소통의 시간, 장소와 대상, 방법 등을 확대하는 방향과 틀이 필요하다.

우리말에 ‘기통차다’ 라는 말은 기가 잘 통한다는 말이고, ‘기가 막힌다’ 는 말은 기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케미’를 확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하자! 통해야 산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