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선업체 간 인수·합병(M&A)과 사업 재편 등 자발적 구조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수년 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일본 전선업계의 사례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시장 구조조정 지원정책인 ‘산업활력법 사업재구축 계획’과 유사한 ‘기활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국내에서 시행되고, 전선업계에서도 사업재편계획 승인기업이 탄생하면서, 일본 사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선업 구조조정 움직임=만성적인 수급불균형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전선업계는 최근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이사장 김상복) 산하 ‘전선산업 발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자발적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 탈출의 단초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업계 공동대응을 통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하고, 전선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업들도 적극 나서고 있다.

폐업과 인수합병(M&A), 조직·인력 구조 개편 등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경기도 안산 소재 전선업체 아이티씨(대표 명성식)는 강원도 춘천의 대한엠앤씨 공장을 매입하고 기존 공장을 매각하는 한편, 회사를 춘천으로 이전하면서 범용 케이블 생산 능력은 줄였다. 대신 고부가 제품인 고압 케이블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아이티씨는 최근 열린 ‘제10차 사업재편계획 심의위원회’에서 기활법 대상으로 승인받아, 정부 지원을 받는 성과를 낳았다.

이와 함께 충북 음성의 서울전선은 업계 중견기업인 두원전선을 인수했다. 나아가 화성전선과 베트남에 공동으로 설립한 SH비나케이블을 전선소재 기업인 갑을메탈과 동일그룹 내 전선 제조사 코스모링크 컨소시엄에 전격 매각하기도 했다.

업계 1위 LS전선은 시공 사업을 자회사인 빌드윈에 넘기기로 결정했으며, 같은 그룹 내 전선업체이자 중저압시장 1위인 가온전선과 미얀마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재편하고 있다.

이밖에 전선조합 회원사였던 진천의 오성케이블, 음성의 한솔전선 등이 폐업했으며, 업계 선두권 기업들의 M&A도 예정돼 있어 당분간 전선업계는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아이티씨의 기활법 승인은 향후 전선업체들이 자발적 구조조정 추진 시 참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는 사례가 될 전망이며, 나아가 앞선 일본의 구조조정 성공 사례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본 전선업계 사업재편 성공 사례=일본의 전선업계 구조조정이 성공한 데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큰 영향을 끼쳤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나라의 기활법과 유사한 구조조정 지원 정책을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해 왔다.

일본 정부는 산업활력법으로 사업재구축계획, 공동사업재편계획을 승인하고 세금을 인하해주거나 인수합병을 어렵게 만드는 각종 규제를 경감시켜주는 등 자발적 구조조정을 적극 지원해 왔다.

먼저 히타치전선과 스미토모전기공업은 전력용 전선 사업의 수요 급감과 판매 가격 하락 등으로 양사 모두 해당 사업 분야에서 영업 적자를 겪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고 고압전력용 전선사업의 합리화와 효율화, 안정적 사업기반 확보를 위해 2001년 사업재구축계획을 정부에 제출, 이를 승인받아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해당 기업들은 ‘제이파워시스템즈’라는 공동출자회사를 설립하고 양사의 전력용 전선사업을 통합하는 한편, 히타치는 정보 가전 관련 사업을, 스미토모는 전자·신소재, 자동차 부품 사업 등을 강화했다.

정부는 공동회사 설립에 따른 등기세율을 경감시켜주는 방법으로 이를 지원했다.

후루카와 전기공업과 후지쿠라도 전력 규제 완화에 따라 일본 국내 설비투자가 감소, 매출 하락을 겪었으며, 해외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들 기업도 2004년 정부로부터 공동사업재편계획을 승인받아, 전력용 전선사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또 2001년 양사가 지중 송전 공사 설계와 해외 판매를 위해 공동 설립한 비스캬스에 추가로 지중 송전 사업의 생산과 국내 판매, 배전과 가공송전 부문의 제조·설계·판매 사업을 양도함으로써 전력용 전선사업의 제조·판매·연구개발 부문을 통합했다.

이후 대기업 전력회사용은 비스캬스가, 태양광 발전소 등 중소규모 발전소는 후루카와전공과 후지쿠라가 각각 담당하며 영역을 구분지었다.

양사는 이 과정에서 설비이전에 따른 부동산 취득세와 자본금 증가에 따른 등록면허세 등을 경감받았다.

양사는 2016년까지 제휴를 이어오다 비스캬스의 국내사업을 재편, 사실상 해산 절차를 밟았으며, 지하·해저 송전선 사업은 후루카와 전공이, 배전선·가공 송전 사업은 후지쿠라가 각각 양도받아 독자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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