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계 ‘당진’ 활기찬 ‘평택’…숨고르고 다시 돌아간다

부곡산단과 포승산단 사이 5.2km 해저터널구간 모습. 지하 60여 m 아래 수직구#3에서 당진 방면으로 758m 가량 공사가 진행됐다.
부곡산단과 포승산단 사이 5.2km 해저터널구간 모습. 지하 60여 m 아래 수직구#3에서 당진 방면으로 758m 가량 공사가 진행됐다.

‘500kV 북당진-고덕 HVDC 건설사업’은 국내 최초의 육상 HVDC(초고압 직류송전) 프로젝트다. 충남 서해안 지역에서 발전한 전력을 평택 고덕산단을 포함한 수도권에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사업으로, 충남 당진 북당진변환소와 경기도 평택 고덕변환소를 건설하고 양 변환소 사이 35km를 HVDC 지중케이블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국내 HVDC 사업은 해저로는 육지-제주 전력망 연계 사업이 2차례 진행됐지만, 육상은 이번이 처음이라, 관련기술 확보는 물론 향후 러시아와 북한, 우리나라, 일본을 연결하는 동북아 계통연계를 위한 HVDC가 본격 추진될 경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일 현장을 직접 방문해 국내 최초 지중 HVDC 프로젝트 추진 현황을 살폈다.

◇오후 1시 30분. 북당진변환소 및 수직구#1.

충남 당진 부곡국가산업단지, 서해안 해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GS-EPS LNG화력발전소가 나온다. 국내 최초 육상 HVDC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북당진변환소 건설현장은 발전소 부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은회색 가설울타리를 빙 둘러 변환소 부지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텅빈 현장에 덩그러니 놓인 조립식 건축물(현장사무소). 좀더 둘러보니 곳곳에 검정색 포장재로 덮인 자재들도 보인다.

척 봐도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말 한전이 신청한 북당진변환소 건축허가를 당진시가 반려한 이후 벌어지고 있는 한전-당진시 간 법정공방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한전이 2심 승소판결을 받은 후 당진시의 상고로 대법원까지 올라간 데다, 관련 손해배상, 행정심판까지 여러건의 송사가 맞물려 있다.

이로 인해 25개월간(올해 4월 토건공사 착공시) 북당진변환소 건설 공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부곡산단과 포승산단 사이 5.2km의 해저터널구간 공사도 마찬가지로 당진시 관할구간은 멈춰있다.

실제로 변환소 인근의 해저터널 시작부인 수직구#1 현장은 고가의 굴착 장비들이 포장재로 덮여있었고, 각종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어 장기간 공사가 멈춰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최진호 한전 서남해계통건설실 차장은 “3월에 대법원 판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진시의 상고이유서에 대한 답변서를 사전에 준비하는 등 대응에 본사 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승소시 조기 사업착수방안을 수립하는 등 공기가 더 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후 2시 30분. 수직구#3.

이번에는 부곡산단에서 시작되는 해저터널이 끝나는 수직구#3 현장을 찾았다.

평택지역 전기공급시설공사라고 쓰인 표지판 아래 입구로 들어서자, 바쁘게 움직이는 현장 인력들이 보인다.

안전모와 안전화, 장갑까지 받아 착용했다. 단단히 무장한채 수직구로 이동했다. 곳곳에 대기하고 있는 자재들이 크레인으로 옮겨지는 모습이 보인다. 어수선하지만 활발한 현장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평택시 관할 구역은 별다른 문제없이 모든허가가 진행됐기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수직구의 입구로 다가선다. 여러 숫자가 표시되는 전광판이 있다. 총연장 1840m. 현재 758m. 산소농도 20.7%. 일산화탄소, 황화수소, 가연성가스 0%. 등이 보인다.

이충열 한전 서남해계통건설실 과장은 “현재 굴진율과 해저터널 내 유독가스 현황을 한눈에 표시해준다. 터널 내부의 센서로 작업환경을 파악해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며 “지능형 궤도주행 이동감시장치도 도입했다. 전력구 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작업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전력구를 자동순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해저터널로 내려갈 수 있는 간이 승강기에 탑승했다. 지하 60여m 깊이를 수직으로 관통한 모습이 아찔하다. 승강기에서 내려 해저터널 입구에 서니 습한 공기가 느껴진다. 지상 위는 영하의 날씨와 칼바람이 불고 있지만, 지하는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온도가 높다.

터널을 자세히 살펴보니 여러 가닥의 케이블과 함께 두꺼운 파이프가 연결돼 있다. 굴착 과정에서 나오는 흙을 밖으로 배출해주는 파이프다. 컨베이어벨트로 굴착토를 운반하는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르다. 신공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조영관 감리단장(선진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이수가압식 실드 TBM 공법을 적용했다. 굴착 부분을 완전 밀폐하고 굴착토를 걸쭉해지도록 만드는 이수를 넣어 굴진하는 방법이다”며 “해저터널 작업 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해수압력을 최소화하고, 자동적으로 콘크리트 터널을 구축할 수 있는 공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저터널을 20여분 가량 걸어들어가자, 콘크리트 터널을 구성하는 자재들이 장비와 연결된 모습이 보인다. 콘크리트 자재 5개가 모여 하나의 링을 구성하면, 내경 300cm, 외경 340cm에 이르는 터널이 만들어지게 된다.

현재 당진 방면으로 758m가량의 해저터널이 만들어졌으며, 올 8월쯤 수직구#1과 #3의 중간에 위치한 #2에 도달할 전망이다.

◇오후 4시. 고덕변환소.

고덕변환소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등 대규모 개발현장 인근에 위치해 있다.

고덕변환소의 외장공사와 토목공사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독특한 디자인의 거대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내부로 들어갔다. 마치 실내 체육관처럼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이 한눈에 보인다. 곳곳에 설치를 기다리는 자재도 쌓여있다.

설비·자재 시공이 시작단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2층에는 제어실이 위치한다. 밸브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형 유리가 설치될 예정이며, 제어 판넬들도 들어선다.

옥외에는 DC설비의 노이즈와 고조파를 잡아주기 위한 필터가 구축될 계획이다.

김승현 한전 서남해계통건설실 차장은 “23m 높이의 천장에 싸이리스터 밸브를 매달게 된다. HVDC케이블을 밸브와 연결하고, AC를 DC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2폴 구조로 건설돼 1차사업이 끝난 뒤 차후 2차 사업으로 확장이 가능하다. 고덕변환소의 규모와 높이는 국내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인터뷰)김갑덕 서남해계통건설실장

“북당진-고덕 HVDC 사업은 북당진과 고덕 등 두곳의 변환소를 HVDC로 연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해저터널구간과 육지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기 때문에, 사업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했죠. 최대의 성과는 민간기업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기술과 공법을 개발했다는 점입니다.”

북당진-고덕 HVDC 건설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갑덕 서남해계통건설실장은 “이번 사업에서 LS전선이 개발한 케이블이 사용될 예정이다. 해당 케이블을 개발하기 위해 1년여간 본사와 사업소 관련 직원과 LS전선 관계자들이 상당히 고생했다”며 “국내 기술로 HVDC 케이블을 개발하고, 상용화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5.2km에 이르는 해저터널 구간에서 안전하게, 효율적으로 케이블을 포설하기 위한 공법도 개발했습니다. 해저터널 구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어요. 내부적으로 과제를 만들고, 역량을 집중한 결과 케이블 접속부 없이 한번에 포설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죠. 사람이 드나들기 쉽고 안전한 양 끝단에 접속부를 만들고, 해저 터널에 실시간 무인감시시스템을 적용하는 ‘해저터널 장경간 포설공법’을 개발했습니다. 현재 특허 등록을 추진하고 있어요.”

김 실장은 현재 당진시와 진행되고 있는 송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건축허가 문제로 당진 구간 공정이 멈춰있는 상황입니다. 다음달 정도면 대법원에 상고 중인 소송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4월쯤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당진시와의 협의에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보다 안정적인 전력계통 운영과 보강을 위한 국책사업이니 만큼, 더 이상의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북당진-고덕 HVDC 건설현장 내 해저터널 구간 조감도.
북당진-고덕 HVDC 건설현장 내 해저터널 구간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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