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SS 솔루션이라면 미국에서도 승산 있다”
미국에선 한국 기업이 기술만 뽑아간다는 인식 팽배
모든 보고 서류로 하는 복잡한 보고라인도 개선해야

정부가 에너지신산업의 해외 수출에 나서면서 국내 전력산업에서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국내 기술이 해외에 나갈 때 가장 중요한 건 다름아닌 엔지니어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링은 주변 산업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주력 산업 중 하나다. 미국에서 전력 분야 엔지니어링 1위 기업인 번스앤맥도널에서 비즈니스&기술서비스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는 함완균 박사 역시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진출할 때 시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발전소를 사거나, 제품을 팔겠다고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며 “미국 시장은 어떤 의미에선 한국보다 더 보수적이기 때문에 제품을 팔기 보다는 솔루션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23일 한전, 이엔테크놀로지와의 MOU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함완균 부사장을 만나 미국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과 한국 기업들의 진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주는 처음이라는 함완균 부사장은 사실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국내파다. 한전 전력연구원에서 근무하다가 15년 전 한국을 떠나 미국 텍사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 당시만 해도 이렇게 미국에 정착하게 될 줄은 그도 몰랐다. 텍사스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미국 시장에 대한 호기심이 그를 붙들었다. 텍사스 주정부에서 2년, 번스앤맥도널에서 3년, 동부전력에서 7년을 일하고 2010년 다시 번스앤맥도널로 돌아가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텍사스 주정부에서는 송·변·배전 계획운용 업무를 했고, 동부전력에서는 지중케이블 관련 업무를 하면서 실무경험을 쌓았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커리어를 쌓은 덕분에 2010년 번스앤맥도널에서 저를 다시 불렀죠.”

그가 일하는 번스앤맥도널은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미국에선 내로라하는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건축, 건설, 환경, 에너지, 공항, 항만, 도로, 물 등 11개 비즈니스 라인을 확보하고 각 분야별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그 중에서도 전력, 송변전 부문에서는 미국 최고로 평가받는다. 포춘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 엔지니어만 5500명이 근무하고, 연 매출은 3조원에 달한다.

번스앤맥도널에서 함 부사장과 같은 직급에 있는 임원은 22명에 불과하다. 그의 아래에 있는 직원만 300여명, 한국인이 임원급 직책에 오른 건 그가 유일하다.

“미국도 한국만큼 사내 문화가 보수적이에요. 낮은 직책에서는 자유롭지만 직책이 올라갈수록 알게 모르게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게 사실이고, 승진도 쉽지 않습니다. 부사장급에 오른 동양인도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직 없었고요.”

그의 정식 직책은 비즈니스&기술서비스 부문 부사장이다. 프로젝트별로 인력편성, 재원, 예산 등을 총괄한다. 함 부사장은 국내 기업인 한전과 이엔테크가 번스앤맥도널과 손잡고 미국 ESS 시장에 공동 진출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미국은 그동안 실증사업으로 ESS를 소규모로 구축한 반면 한전은 주파수조정(FR)용 ESS 사업을 통해 수백MW의 ESS를 전력계통에 연계한 경험이 풍부합니다. 미국에서도 ESS를 계통에 연계하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노하우가 필요한 거죠.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배터리, 한전과 이엔테크의 운전경험 등은 미국 시장 진출하는 데 큰 장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돕다가 발생한 문화차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한국은 보고라인이 너무 복잡해요. 담당자가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지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모든 사안을 서류로 만들어 보고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또 미국 내에서 ‘한국 기업은 사업 파트너를 찾기보다는 기술만 뽑아가려고 한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과거에는 한국이 그렇게 성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는 거죠.”

함 부사장은 이번 한전과의 협력을 시작으로 국내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의 기술력에 미국 현지의 번스앤맥도널이 서포트한다면 미국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1998년 미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언젠가는 받은 만큼 한국에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한국의 전력회사들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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