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호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사장(서울공대 객원교수)
박규호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사장(서울공대 객원교수)

라스 베가스에서 동경으로 향하는 1만m 태평양 상공을 날고 있다. 약간의 흔들림 구간을 지나 조용한 비행이 계속되고 있다. 델타항공의 뚱뚱한 아주머니들이 일본어 자료를 보며, 열심히 키 보드를 두드리는 내가 신기한 지 자꾸 먹을 것을 권한다. 우리처럼 젊은 아가씨들이 아니지만 친절하다. 역시 프로답다.

세계 최대 전자 IT쇼인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 참관과 미국 최대 충전사업자인 ChargePoint사와 업무협의를 하고,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중부발전이 참여한 후버 댐 인근의 볼더 태양광발전소도 견학했다. 또한, 일본에 들러 Japan Charge Network, 소프트 뱅크와 협력을 논의하고 일본 전력회사의 옛 친구들도 만나는 일정이다.

CES는 2주 전부터 우리 언론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보도경쟁을 벌여, 관련 기사를 본 기고에 참고하려고 전부 스크랩해서 가져 왔다. 내가 여기서 더 다루는 것이 진부할 정도로. 하지만 자료를 더 보지 않고 쓰기로 했다. 현지에서 만난 중견 언론인 왈, 다들 협찬 받아서 그런다는 얘기가 조금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였고,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다.

이번 CES의 특징은 융합과 연결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AI, IOT를 연결고리로 전자. IT와 자동차, 통신, 여행 레져, 헬스케어, 스포츠 의류 등 타 산업간 이종융합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여 준다. 첨단기술과 제품의 경연장이라는 보도에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참가업체들이 제품 홍보에 열심이다.

중국이 대세여서 지나치는 동양인의 대부분이 중국어를 하지만, 우리 기업인 삼성의 QLED, LG의 OLED 경쟁도 볼만 하였고 부스의 규모도 압도하면서 이 곳이 가전전시회임을 대변하고 있어 그나마 자랑스러웠다. 현대차가 심혈을 기울인 자율주행차가 처음으로 야간 주행에 성공하였다는 반가운 소식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코웨이와 보디 프랜드관도 인상적이었으나, 한국인 내방객도 많이 줄었다는 모 언론사 국장의 얘기처럼 한국관의 위상은 좀 열세인 같아 아쉬웠다.

단체장과 이름을 대면 알만한 기업의 수장들이 많이 참석하였다는데, 현장에서 그리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아 아쉬웠다. 미국 어느 기업 회장처럼 혼자서 가방을 메고 부스를 돌며, 꼼꼼히 살피는 모습을 좀 더 보여 주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무 참가자의 보고를 통해 겉 모습은 알 수 있겠지만, 일부러 참석하였으니 좀 더 발품을 팔며 공부하는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본을 보임은 물론 깊이 있는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부발전이 투자한 볼더 태양광발전소는 100MW 규모의 1단계가 가동 중이고 50MW의 2단계도 성공적으로 완공돼 시운전 중이었다. 향후 150MW 규모의 3단계도 준비 중인데, 기존 발전소의 발전가격과 같아지는 그리드 패리티를 넘어선 규모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쓸모가 없었던 광활한 사막도 훌륭한 자원임을 보여 준다.

신재생에너지가 필요함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설치할 마땅한 공간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이 절절히 가슴에 다가 온다. 성공적인 투자결과와 현지에서 고생하는 중부발전 심형섭 차장의 건승을 빈다. 나라마다 부존자원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전원 믹스도 달라져야 함을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출장이었다.

특정 아이템이나 전문지식을 가지고 참가한 게 아니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ChargePoint의 요청으로 방문한 출장목적은 충분히 이루었다. 같이 참가한 두 중견 언론인과의 깊이 있는 대화와 미국 상류사회에 속한 성공한 한국인과의 만남을 통해 충전 인프라 투자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미국 공부를 더 해야 겠다는 다짐을 덤으로 얻어 간다. 하지만, 다음에 CES에 온다면 좀 더 치열한 고민을 하고 와야 겠다는 생각은 부인할 수 없다.

갑자기 기체가 요동친다. 내 글의 빠른 정리를 재촉이나 하듯이.

그렇다. 지금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체면이나 모양, 형식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를 실용과 내실 위주로 빠르게 바꾸어야 함을 절감한 것이 이 번 참관의 큰 수확이다. 윗선의 일방적 지시에 순응하거나, 먼저 알아서 맞추는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어야 기업도 국가도 바르게 설 수 있음을 작금의 사례가 뼈저리게 시사하고 있지 않은가.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변화의 실천으로 실질적인 선진화가 조속히 이루어 지기를 바라며, 나 부터 먼저 실천해야 겠다는 새해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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