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영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
허균영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교수

대개 학생 때에는 답이 알려진 문제를 푼다. 쉬운 문제다. 사회에 나오면 보통 답이 알려지지 않은 문제를 풀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 되면 문제도 없는 ‘문제’를 푼다. 이쯤 되면 어려운 문제다. 요즘에는 문제가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증상은 보이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모호하고 여러 이해당사자는 자기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장단이 있고 득실이 있어서 해결책으로서의 조합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추정되는 것도 실행에 옮기려면 무척 오랜 기간이 걸리고 큰 비용이 수반된다. 나중에 잘못했음이 드러나도 보통 일을 벌인 사람들은 책임지지도 책임질 수도 없다. 세상이 하도 급변해서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캐스 선스타인 교수를 살짝 인용하면 이 정도가 되겠다. 사람들은 장기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손실에 대한 감이 없으며,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거나, 이기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에 형편없이 대처한다.

전에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을 도와드리기만 하면 됐는데 시간이 갈수록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피곤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관계로 그동안 수업료를 조금씩 내면서 스스로 경험한 것들과 대가들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나만의 문제풀이 방법을 정리해 봤다.

우선 어려운 문제일수록 해결책은 단순하게 하고, 알고 있는 방법은 최대한 공평하게 배분한다. 좀 더 좋은 해결책을 찾겠다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계산해 봤자 어차피 정답이 아니고 결론에 대해 얼마든지 이견을 제시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도 길이 아니다. 평소에는 비용이 좀 더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유사시 파국을 막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단순하면서 공평한 배분이다.

아주 어려운 문제는 독립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집단지성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독립성이란 고민의 과정에 외압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머릿속에 항상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하지는 않기 때문에 어떤 사안을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은 이상, 그것이 괴담인지 진실인지, 포퓰리즘인지 민심을 반영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것이 외부의 힘 있는 분들의 한마디 한마디로 거버넌스에 유입되어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면 배를 산으로 보내기에 충분하다. 집단지성은 극단화 과정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무슨무슨 마피아라는 말로 끼리끼리 문화를 힐난하는데 소수의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의사결정을 내릴 때 갈등을 최소화하기 마련이다. 리더의 의견이 집단의 의견이 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자가검열 현상도 불가피하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일수록 집단 편향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자세가 함께 필요하다.

마지막은 거버넌스가 내놓은 결과에 대한 장기적 신뢰, 즉 공신력을 부여해야 한다. 결정권자 입장에서 보면 아주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 놓은 이상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자신에게 손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결과물을 일회용 또는 면피용으로 생각하고 사용하기 시작한다면 끊임없는 갈등만 양산할 것이다.

의사결정 전문가도 아닌 필부의 생각이라 신문 지면이 아깝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얼마전 기후변화 대응 정책결정시 유사한 접근방법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고 효과를 기대한다는 국제 보고서를 마침 읽은 적이 있어 약간 마음이 놓였다. 더불어 해당 보고서에서 강조했던 것은 방법 자체가 아니라 이를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및 전력 수급이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아주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회성 공약이 아니라 접근방법에 자체에 대한 약속과 실천을 강조하는 오피니언 리더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