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에너지 확산, 예상보다 빨라...선제적 대응 없으면 글로벌시장서 도태 가능성 커

◯…지난 5월 9일 독일에서는 한때 전력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전체 전력수요의 80% 이상을 충당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화력, 원자력 등 다른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보다 우선 매입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로 인해 전기 공급이 수요보다 더 많을 경우엔 운전 유지를 위해 기존 방식의 발전사업자가 전력시장에 전기를 마이너스 가격으로 팔 수 밖에 없다. 이날 독일 전력시장의 전력거래가격은 한때 -130유로를 기록했다.

◯…과거 뜬구름 잡는 얘기로만 여겨졌던 스마트그리드는 전통적인 전력산업의 공고한 영역을 무너뜨렸다. 공급되는 전기를 수동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소비자는 자가발전과 전력소비패턴 정보를 활용해 직접 전력을 판매하는 ‘프로슈머’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구글, 애플 등 IT기업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이나 에너지효율화 사업으로 손을 뻗치고 있고, 전력소매시장 자유화가 이뤄진 일본에서는 이미 소프트뱅크 같은 통신회사가 전기를 판매하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의 강자였던 GE, 지멘스 등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화를 천명하며 관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각변동이 이뤄지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ESS 등 에너지신산업은 더 이상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술이 아니다. 파리기후협약 이후 전 세계가 신기후체제 대응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산업구조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대세는 신재생에너지

이미 선진국의 전력회사는 변화의 물결에 동참,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있다. 독일 최대 전력회사인 E.ON은 사업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본사에서 분사했고, 영국의 국영석유회사 BP는 브라질과 미국에서 각각 바이오연료와 풍력발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프랑스 전력회사 토탈은 지난 5월 배터리 제조회사인 샤프트(Saft)를 11억달러에 인수해 재생에너지 사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석탄발전 억제의 일환으로 ‘클린 파워 플랜’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미국 전기 생산에서 석탄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최근 30년 사이 가장 낮았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힐러리 클린턴이 차기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석탄과 석유 수요는 감소국면에 접어들었다. OECD 회원국들은 석탄발전에 대한 해외투자를 제한하기로 합의했고, 세계 최대 규모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석탄과 오일샌드 등 화석에너지 투자의 중단을 결정했다.

산유국 사이에서도 신성장동력을 발굴하지 못하면 위기에 빠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한 ‘비전2030’을 발표했고 이란은 정유, 화학, 자동차 등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온난화 규제, 신재생에너지 발전 가속화

파리협약 이후 국가 차원의 환경규제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온난화 자율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에너지 시장 변화의 동인이 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들은 자신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의 기후변동성 리스크 점수를 낮추기 위해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삭감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도 이미 각종 개발프로젝트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사업의 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위국인 중국은 내년부터 대도시 자동차 배기가스와 연비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2위인 미국도 공해차량에 대한 벌금을 강화하고 있다. 클린디젤 사태로 내홍을 겪었던 EU 또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자동차 보급 확대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반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를 비롯한 에너지신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2008년 와트당 3달러 수준이었던 태양광 발전용 모듈 가격은 2015년 0.61달러까지 떨어졌다. 기판 두께도 2005년 약 300mm에서 현재 200mm정도까지 내려온 상태다. 여러 원소를 가진 재료를 다중 접합해 실리콘 태양전지 셀의 발전효율을 최대 40%까지 높일 수 있는 기술도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단점을 전력IT기술이 보완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요부분에서는 기업이나 가정의 각종 전자기기에 센서가 탑재돼 전력수요가 실시간으로 관리된다. 공급측면에서도 분산된 재생에너지 시설이나 축전지가 IT 기술로 통합돼 하나의 발전소처럼 수요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에너지 시장 변화…산업구조 변화 필요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에너지 시장의 게임 룰이 변화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변하는 에너지 시장의 게임 룰에 대처하기 위해 차세대 에너지 체제에 맞는 산업구조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잠재력을 인식하고 관련 투자에 나서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계적 흐름에 우리나라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경제구조에 비해 에너지 사용 비중이 크고, 제조업이 주력산업인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시장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1940년대 전체 에너지 중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72%였다. 하지만 1980년 27%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석유의 비중은 15%에서 45%까지 상승했다.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석유 메이저 기업은 글로벌 기업이 됐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자연스레 문을 닫는 석탄 광산도 늘어났다.

보고서는 현재 진행중인 그린에너지로 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봤다. 기존 업계 질서를 파괴하고 재편하는 한편 뉴비즈니스를 창출할 것이란 진단이다. 다만 변화의 속도가 과거보다 더욱 빠를 가능성을 경고하며 산업구조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는 2040년이면 발전설비에서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수력을 제외해도 28%까지 상승해 최대 발전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16년 6월 장기전망에서 2035년 신재생에너지의 에너지 수요 비중을 2011년 전망치인 14.2%에서 15.6%로 상향했다. 강화되는 세계 각국의 관련 정책과 에너지신산업 기술의 발전 속도를 반영한 조치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의 원가 하락 추세가 빨라지면서 에너지 가격 경쟁력을 이용할 수 있는 국가의 제조업이 기존 전력망에 의존한 국가의 제조업에 비해 점차 유리해지는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며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가 급격히 변할 때 에너지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과 국가가 달라지고 신규 에너지를 활용한 산업이 부상한 것처럼 업계의 상식이 바뀔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에너지 시장 변화 트렌드 변화에 대응이 늦어진다면 재생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절약적 생산시스템 확대 등으로 에너지 코스트를 크게 낮추고 있는 다른 나라와 기업에 비해 순식간에 낙후될 수 있다”며 “전력생산이나 유통과 관련한 에너지의 IT화, 고효율화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선진국간의 격차가 확대될 경우 우리나라 산업의 경쟁력이 열세에 빠질 위험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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