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기술력으로 평가, 공정경쟁 문화 조성에 기대감 표시
영업제약, 업체 간 물량 부익부·빈익빈 등 부작용 목소리도

이달 28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각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우선 이 법의 시행에 기대감을 나타내는 업체들은 제품과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 전부터 젊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구매담당자들의 인식이 제품의 품질이나 기술 등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달라졌다”며 “김영란법의 시행은 이 같은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판단에 확신을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서 공공기관의 구매행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돈으로 영업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때문에 관수시장에서 이제는 브로커들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광 업계의 대기업 관계자도 “어차피 관급시장은 입찰로 이뤄지기 때문에 특별히 로비를 할 일은 없다”면서도 “그러나 모두 로비를 안 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가면 품질경쟁력을 갖추는데 집중하는 업체가 더 늘어나 혼탁한 업계가 개선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건설업계도 이번 기회에 인·허가 과정이나 프로젝트 수행 과정이 투명하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시공사 선정을 위해 선물 등을 주는 관행도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건설업계에 연착륙된다면 법 제정의 취지대로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오로지 실력으로 겨루는 공정경쟁 문화가 자리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론적으로는 김영란법 시행에 찬성하면서도 이 법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당장 예상되는 부작용은 기업들의 영업활동 제약이다.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의 구매담당자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업체 영업 담당자와의 만남 자체를 꺼려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 조명업체 관계자는 “직접 카탈로그나 제품을 보여주면서 특징, 장점을 설명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구매담당자들이 만남 자체를 꺼리고 있어 실적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업체 간 물량 양극화도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는 현상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대면 중심의 영업에 제약이 따를 경우 상대적으로 브랜드파워와 실적에서 앞서는 품목별 조달 상위권 업체와 후발·신생업체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달업체와 수요기관을 연결해주는 소위 딜러(브로커)들의 영업이 김영란법으로 인해 사실상 차단되면서 이들을 흡수하는 조달 상위권 업체들의 물량 확대는 두드러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브랜드와 영업망이 취약한 후발업체, 신생업체의 시장 확대는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금전, 로비, 청탁 등이 불가능해지면서 정부 조달시장의 영업 행태도 큰 변화를 맞게 될 것”이라며 “우선 딜러들의 활동이 크게 제약받기 때문에 이들이 LED조명, 배전반, 태양광 등 주요 조달품목 상위 업체들의 영업 인력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며, 이들을 얼마나 많이 흡수하느냐에 따라 조달 상위업체들의 수주량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때문에 일각에선 김영란법 시행 이후 조달시장의 흐름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브랜드와 영업력이 취약한 후발업체, 신생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뿐만 아니라 김영란법으로 인해 공무원들이 업계 관계자와의 만남을 꺼려하면서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탁상행정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당분간 공무원들이나 지자체 구매담당자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업계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정확한 현장의 상황이 정책당국에 전달되지 못하고, 공무원들이 현실과 괴리된 탁상행정을 펼쳐 자칫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돼도 영업료 관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히려 수요기관과 브로커들의 뒷거래가 더욱 음성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업체 관계자는 “성매매특별법이 있다고 과연 성매매가 사라졌느냐. 오히려 이상한 곳으로 숨어들어가고, 더욱 음성화되지 않았느냐”면서 “김영란법도 혼란을 주다가 똑같은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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