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끝자락에 늦깎이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특별히 가고픈 곳이 없어 고향집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어디 갈 곳이 없어서 집으로 휴가를 가느냐는 지인들의 핀잔에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휴가를 즐기고 싶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택시로 20분 만에 고향집에 도착했다.

이렇게 금방 올 수 있는 곳이었나 하는 생각에 괜히 죄송하다.

고향집도 덥긴 매한가지다.

에어컨은 왜 안틀고 계시느냐는 말에 너무 더울 때 잠깐씩만 켜신다는 어머니.

아마 올 여름에도 에어컨은 병풍처럼 세워만 두고 선풍기로 나신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는 맥주 한 캔으로 그간의 안부를 전한다. 안주는 옛날이야기가 절반, 사는 얘기가 절반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더위에 이어 전기요금 이야기가 주제가 됐다.

그래도 기자랍시고 한전 입장을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우습다.

이번 여름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은 ‘전기요금 누진제’라는 해묵은 화두를 ‘핫’한 이슈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한전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막대한 이익을 거두면서 이를 국민들에게 환원할 생각은 하지 않는 악덕하고 부도덕한 공기업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비난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여기에 산업부의 말 한마디가 들끓고 있는 국민들의 감정에 기름을 부으면서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누진제 논란 당시 언론에 등장한 전문가들은 너나할것없이 입을 모아 누진제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약관만 하나 고치면 되는 쉬운 일을 왜 하지 않느냐며 한전의 미온적인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전기요금 한시인하 등 대책은 여당의 당정협의 등 ‘정치적’인 움직임이 있고 난 이후에 마련됐다. 덕분에 이전까지 전기요금 인하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던 정부는 하루아침에 말을 바꿔야 했다.

전기요금이라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힘이 한전이나 정부가 아닌 ‘정치’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대목이다.

7~8월 전기요금 고지서라는 공포영화가 예고편부터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지난 여름 무더위를 온 몸으로 받아낸 국민들과 말 한마디 못하고 여론의 집중포화를 견뎌야 했던 한전, 드라마틱한 그림을 그려낸 정치권 모두 수고가 많았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