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하여 난장이 벌어지고 있다. 폭염의 재난 상황에서 온 나라의 전문가들이 전기요금 폭탄을 운운하며 누진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묻고 싶다. 재난이 문제인데 왜 제도를 비난하는가? 누진제에 굴레를 씌워 1,000kWh/월(OECD 평균의 2배)의 전기를 10만원에 쓰겠다면, 이것을 옳다고 할 수 있는가?

누진제는 범인이 아니다. 누진제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제도인가를 생각해보면, 누진제도는 옳다. 실행이 어긋나있을 뿐이니, 이것을 바로하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온 힘을 다해 누진제를 지켜야 한다.

원래 전기요금 제도는 공유자원의 합리적 분배를 위한 것이다. 최소한의 전기소비는 필수적이다. 아무리 가격을 높여도 어쩔 수 없다. 해서 적절한 전기소비까지는 낮은 가격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함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전기를 쓰면 화석연료를 고갈시키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가 생긴다. 너무 많은 소비는 공동체의 적이며 후대에 대한 착취다.

에너지의 공평성은 소비권의 공평성이다. 균일요금제는 가진 만큼 많이 쓸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제도다. 일반적인 재화와 용역이라면 이것이 맞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이라면 적정 수준의 소비까지는 저렴한 평균비용으로 보장하고, 과도한 소비는 높은 한계비용으로 규제함이 옳다. 그것이 누진제다. 우리의 누진제가 4단계까지의 소비에 대해서 OECD 대비 절반의 평균요금을 받고, 누진 6단계의 한계비용을 높게 정한 이유다.

일부 소비자는 전기를 기꺼이 많이 쓸 것이다. 대개 이들은 높은 가격을 낼 수 있고, 내야 한다. 그래서 남긴 이익은 화석연료를 아끼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는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태양광발전이나 고효율 에너지설비도 지원해서 일자리를 늘린다. 이것도 누진제의 미덕이다. 우리의 전기요금 누진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공평한 제도다.

우리 누진제의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주장이 12배나 더 받는다는 것과 누진제 급간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누진제가 할인, 할증제라서 받는 오해다. 우리 누진제는, 평균적인 소비량을 기준삼아(누진 3-4단계) 이보다 덜 쓰면 할인, 더 쓰면 할증하는 제도다. 할인은 두 번 해서, 2단계에선 반값, 1단계에선 1/4 가격으로 엄청 할인해준다. 모든 소비자가 처음 200kWh에 대해서 이런 혜택을 누린다. 할증도 두 번 하는데, OECD에 해당하는 5단계 소비량엔 OECD 평균 수준의 요금을 받고, 6단계에선 소비자가 70% 더 높은 한계비용을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의 누진제는 할인 2단계와 할증 2단계가 결합된 6단계 설계다.

다른 나라는 할증 누진제다. 당연히 2-3 단계에, 2-3배 할증한다. 따져보면 우리와 기본 취지가 같다. 오히려 우리의 할인할증제가 더 합리적이다. 할인구간이 있기 때문에 6단계인 것이다. 또한 할인한 1/4 요금을 기준으로 할증한 3배의 요금을 따지니 12배가 된 것이다. 누진제 급간이 더 많다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며, 12배 할증 운운은 오해다.

우리 누진제는 전체 소비자의 96%가 해당되는 누진 5단계의 끝까지 써도, 평균 260원/kWh의 가격이다. 딱 OECD 33개 국가의 평균이다. 물론 덜 쓰면, 할인받는다. 해서 평균요금은 OECD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처음 할인받은 혜택은 잊고, 나중에 받은 할증에 화낸다. 이렇듯 누진제는 운명적으로 인기없는 가격제도다.

이제 누진제를 버린다면, 대기 중인 전력수요가 무거운 오버슈트(Overshoot)를 초래할 것이다. 전기온돌, 냉난방 겸용 EHP 등 전기난방기, 전기건조기, 인덕션렌지, 전기온수기, 간접조명 등등 현재 일반용 전기요금을 내는 빌딩에서는 퍼져있으나 누진제에 의해 아파트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수요가 몰려올 것이다. 짐작컨대 소득이 많은 계층이 앞장서 가스로 하던 열수요를 전기로 바꿀 것이다. 이들은 한 달 2,000kWh를 쓰고 기꺼이 20만원을 낼 것이다. 겨울의 피크수요는 나라의 짐이 될 것이다.

이러한 누진제의 가치를 지키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고치면 될 것이다.

첫째, 전기요금 폭탄 문제다. 그런데 요금폭탄은 누진제가 아닌 폭염 때문으로 재난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재난이라면 한시적인 구난조치로 해결할 수 있다. 폭염이나 한파가 발생할 때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면 된다. 자연법칙 상 재난을 이기는 유일한 수단이 에너지라서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발표한 정부의 대책은 미진했다. 보다 더 많이 배려해줬어야 했다. 아울러 재난상황을 틈타 제도의 근본을 흔들고, 응당한 상식을 버린다면 나라의 장래를 망치는 것이다.

둘 째, 소득수준 증가에 따라 늘어난 필수 전기소비량을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누진 1-2단계를 묶고 폭을 300kWh까지로 확대하는 것이다. 나머지 단계는 가격도 구간 폭도 지금처럼 하면 된다. 그러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OECD 평균(지금보다 약 2배) 수준의 소비에 OECD 평균 수준의 요금을 낼 것이고, 요금폭탄은 없어질 것이다.

셋 째, 현재의 가구(주택)기준 누진제에는 1인 고소득 가구와 다인 저소득 가구 사이의 공평성 문제가 있다. 이는 사람(가구원) 기준의 누진제로 해결할 수 있다. 가령 1인가구는 단계 별 구간 폭이 50, 100 등으로 올라가게 하고, 4인 가구는 200, 400 등으로 한다. 이것은 소비자가 자신의 가족 수를 등록하기만 하면 된다. 스마트미터기로 간단하게 실행할 수도 있다.

우리 누진제의 근본은 훌륭하다. 폭염의 재난상황과 전기화된 삶을 반영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만 보완하면 자랑스러운 제도다. 진짜 문제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민낯에 있다. 혁신적인 에너지 기술을 가진 기업이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노후한 기술과 설비가 미래의 성장과 환경을 좀 먹고 있다.

이제 오히려 누진제를 보다 강건하게 세우고, 산업부문 전기소비의 근본적인 문제를 결단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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