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누진제 국민적 불만 고조...요금이지만 소비자 선택권 없는 일종의 세금
피크부하 줄이려면 계절별, 시간대별 차등요금제가 누진제보다 효과 커

대한전기학회 전력기술부문회는 24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전기요금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긴급진단 시사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정도영 전력거래소 수석전문위원, 최종웅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 대표, 최재석 경상대 교수, 박준호 전기학회 차기 회장, 조성봉 숭실대 교수, 하승수 녹색당 대표 등 전력전문가들이 발제자와 패널 등으로 나서 전기요금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였다.

◆전기요금? 전기세? (정도영 전력거래소 수석전문위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국민적인 불만과 교육용 전기요금이 비싸다는 교육청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낮은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력의 과다소비가 이뤄지고,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과 위험한 원전 건설이 증가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전기요금은 문제가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요금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규제하는 경직적 성격이 크기 때문이다. 현행 정부 규제요금 체계는 독점사업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한전의 총괄원가에 근거해 투자보수율을 규제하다보니 소비자 선택권이 전혀 없고, 지역별 차등이 없는 종별 전국 단일요금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전력산업의 환경 변화에 맞게 전기요금도 개편돼야 한다. 우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수요관리형 요금제가 도입돼야 한다. 피크부하를 줄이려면 누진제보다도 시간대별 요금이 효과가 크다. 또 환경비용 등의 외부비용을 전기요금에 내제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전력계통상의 송전혼잡과 분산형전원 도입을 위해선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이 시급하다. 아울러 전력산업기반기금이 처음 조성될 때 그 목적 중 하나는 에너지빈곤층의 보조도 포함돼 있었던 만큼 전력산업기반기금의 투명한 집행과 함께 요금제도 결정과정에서 전문가 그룹과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한국은 서비스가 전혀 없어 전기요금이 아닌 전기세 (최종웅 인코어드 테크놀로지스 대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은 전기요금이고, 한국은 전기세라고 말한다. 요금은 서비스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매월 배달되는 고지서만 있을 뿐 다른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다.

또 올해 누진세 문제가 국민적인 불만으로 갑자기 터진 것은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에너지도 국민들의 삶 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90개가 넘는 요금제를 마련해 이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돼 있다. 판매자유화가 시작되면서 전력회사뿐만 아니라 가스, 통신, 유통 회사들도 전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 동경가스는 가스요금과 전기요금을 패키지로 사용할 경우 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통신요금과 전기요금의 결합상품을 내놨다.

동경전력은 2018년부터 실시간 요금제를 도입할 계획이며, 1초 단위 스마트미터를 보급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제 계량기를 집밖이 아닌 집안으로 들여오자는 개념이다.

◆누진구간 축소하고 용도별에서 전압별 요금제로 전환 필요 (조성봉 숭실대 교수)

우리나라 전기요금의 가장 큰 문제는 교차보조다. 용도별 요금체계다 보니 가정용이 산업용을 보조하고 있고, 지역별 교차보조도 이뤄지고 있다. 또 정부와 한전은 전기요금을 통해서 산업을 보호하고, 농어민에게 혜택을 주고, 국민의 소득을 재분배하는 사실상 통치행위를 하고 있다. 판매서비스가 거의 없다. 경쟁이 없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울러 검침일에 따라 요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고, 검침일을 국민이 선택할 수 없다는 것도 심각한 사안이다.

지금이 전기요금 체계 개편의 적기다. 전력수급 상황도 좋고, 연료비가 싸서 한전의 경영실적도 역대 최고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 여름 한전은 전기판매로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는 요금제 개편으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지금이 이미 최악의 상황이다. 상당수 가정의 전기요금이 20만원을 넘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2만원가량 깎아준다고 하니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9월 15일쯤 집으로 전기요금 고지서(폭탄)가 배달되면 불만은 극에 달할 것이다. 9월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는 최대 현안이 될 것이다. 전기요금 개편과 관련해서 단기적으로는 주택용의 누진구간을 2~3단계로 줄이고, 산업용도 차등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용도별 요금제에서 전압별 요금제로 바꾸고,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도입해서 송전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부분은 판매경쟁을 도입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력에서 원가를 따질 부분은 송배전 비용 정도에 불과하다.

◆합리적인 누진제 개편과 새로운 피크 관리 필요 (하승수 녹색당 대표)

누진제 자체가 문제인가 비합리적 누진제가 문제인가를 곰곰이 따져 볼 때 누진제 자체는 필요하다고 본다. 비합리적인 누진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바꿀 것인가가 초점이다.

누진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지만, 많이 완화하면 1~2단계 구간 요금이 올라가는 문제점이 있다. 때문에 봄·가을까지 누진제를 손보기보다는 여름과 겨울철에만 요금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여름과 겨울의 한시적인 문제라면 계절별로 누진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왜 버텼을까를 고민해 보면 정부는 전기요금체계 전체를 개편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용에만 왜 누진제를 도입하냐는 국민적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 기존 산업용, 일반용 등 용도별 요금체계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가정용 누진제 때문에 피크관리가 되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해 불만을 잠재우기보다는 오히려 불만을 가중시키기만 했다.

또 전기요금 문제는 피크전력도 같이 봐야 한다. 올 여름 폭염으로 최대전력수요가 8518만kW까지 치솟았다. 지난해보다 무려 800만kW나 증가한 것이다. 정부는 최대전력수요를 고려해 전력수급계획을 짜고 있다. 하지만 발전소를 짓는 것 보다는 이제 피크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피크시점에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

아울러 전기요금에 있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 3.7% 요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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