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실책 딛고 ‘글로벌 플레이어’ 키울 ‘토양’ 시급”
눈앞 성과 연연…대기업 체질 약화·中企 부실 ‘부메랑’
정보·제도 인프라 확충…정부·조합 역할 재정립 숙제
시장분석·미래예측 바탕 글로벌 전략 ‘새판짜기’ 필수

박대희 원광대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 전선 부문 최고의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79년 금성전선(현 LS전선) 연구개발실을 시작으로 전선과 인연을 맺은 박 교수는 줄곧 전기재료·물성분야에 매진해왔다. 원자력 발전소용 고무케이블 시험과 초고압케이블 접속자재 개발 등에 참여했으며, 교단에 선 뒤 그가 원광대에서 전력케이블 단기 과정을 위해 만든 책자는 ‘바이블’로 불리며 오랜 시간 읽혀 왔다.

전선시장에 대한 조예가 깊은 그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박 교수는 인터뷰 내내 예리한 시각으로 거침없이 열변을 토했다.

“국내 전선산업은 매출 감소와 적자 누적, 자금난 등 극심한 위기에 빠져있습니다. 이미 내수는 한계이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도 쉽지 않아요. 일본·유럽 등 전통의 강자들과 기술적으로 경쟁하면서 중국의 물량·가격 공세에 맞서야 하는 이른바 ‘넛 크래커’ 현상에 직면해있기 때문입니다.”

박대희 원광대 교수는 “현재 전선업계가 겪고 있는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전략적 요인에 있다”며 “우리 전선업계의 기술 수준이나 제품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다. 여기에 전략적 관점을 바탕으로 경제 상황을 살피고 미래를 모색해야 했지만, 근시안적 사고로 투자에 실패한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관련 대기업 OEM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의 현 실태와 대기업들의 외도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국내 시장을 이끌던 소위 대기업들은 기업 규모를 키우는 데만 혈안이었고, 본업보다 부동산 등 다른 분야로 외도를 했어요. 반대로 재료나 권선, 마그네트 등 전선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비즈니스는 떼어 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명확한 비전이나 별다른 기술개발 없이 대기업 OEM 물량에 기대오면서 성장에만 몰두했어요. 눈앞의 성과에만 연연한 과거가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 성장이나 구조조정을 이끌어야 할 대기업들의 체질은 약화됐고, 중소기업들은 별다른 돌파구 없이 생존에 초점을 맞추며 부실화되고 있다는 것.

“본래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별도의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전선 산업은 대·중소기업이 서로 같은 품목으로 경쟁을 하고, OEM 물량으로 밀어주기도 하지요. 이런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서로 간 영역을 확실히 구분해 대기업은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중소기업들은 특화 아이템을 이용한 글로벌 마케팅에 나서야 합니다.”

박 교수는 “로컬 기업으로서 단순히 해외로 나가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넘기는 데 집중하지 말고, 세계적 관점에서 기술과 경험, 인적자원 등을 가져가야 한다”며 “잠시 ‘반짝’하지 않고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이 되도록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리고 박 교수는 대·중소 전선업체들이 진정한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현 전선업의 가장 큰 숙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미래 전략을 짜는데 활용할 수 있는 통계 등의 데이터 자체가 없는 데다, 산업 진흥을 지원해야 하는 정부, 업계를 위한 사업을 추진해야 할 전선조합 등이 제 역할을 못하는 등 업계 발전을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미국·일본 전선시장을 예로 들었다.

“가까운 일본이나 미국에서 배울 부분이 많습니다. 일본은 조합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확한 통계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습니다. 분기마다 온라인 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요. 전선업계는 이를 경영과 투자, 비즈니스 모델 발굴에 활용하죠.”

반면 우리나라는 각 회사의 매출 정도만 잡혀있고, 산업 인사이트가 가능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관련 통계자료가 나온다 해도 중복 매출이나 허수가 많아 믿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와 전선조합이 이런 부분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허수는 버블을 만들고, 제대로 된 투자를 어렵게 하죠. 시장 규모, 수출입 관련 데이터가 제대로 공개돼 시장을 예측하고 명확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이를 위해 전선조합이 나서야 하며, 역량이 부족하다면 정부의 지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영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부해 역량을 높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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