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전력산업이 대분기의 지점에 있음을 느낀다. 직류 전환, 더 나아가 전류의 디지털화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 대부분의 전문가들조차 직류전환이 완만하고 오래 걸릴 것이라고 여기지만, 아니다. 그것은 임계에 임박해 있다. 직류를 주파수가 0인 교류라고 여기면 오래 걸릴 일이지만, 직류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전류임을 알게 되면 더 늦출 수 없음 또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의 대분기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결과는 심히 창대하여 기존에 있던 모든 것을 바꾸거나 없애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들로 채운다. 에너지의 전환이 곧 문명사적 전환이곤 했다. 그런 대분기가 임박했다면, 무엇 때문일까?

우선 현재의 우리 전력체계는 심각한 부양한계에 직면해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전력망의 부양능력은 온실가스와 유해입자(미세먼지) 문제로 인해 80GW 수준이 적정 부양능력이었을 것이다. 두 가지 문제 모두 화석연료의 과다한 사용이 원인이며, 그 치유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석유 자동차의 전기화, 석탄연료의 가스전환을 서두르지 않고는 90GW를 넘는 더 이상의 확장은 감당할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기에 불가능해 보인다. 단기적인 운동능력 향상을 위한 약물복용이 결국 파멸을 초래함과 같다.

여기에 우리는 좁은 국토에 세계 10위권의 생산과 소비를 감당하고 있다. 한 단위의 경제활동에 쓸 수 있는 가용토지의 면적을 따져보면 우리나라는 덴마크나 독일의 10% 이하, 미국의 3% 이하가 된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친환경설비든 원하지 않는 혐오설비든 그것이 국토를 소비하고, 더 좁게 만드는 일이라면 우리 국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부양한계는 창발적인 혁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농업혁명은 토지의 부양능력을 무려 2만 배나 키운 혁신이었고, 수렵의 한계를 해결했다. 18세기 이후의 변화도 근본 원인은 에너지였다. 영국은 당시 가장 심한 에너지 부양한계에 직면한 곳이다. 늘어난 도시인구와 산림 황폐화로 장작연료의 공급부족이 왔고, 결국 장작 에너지 가격이 2.5배 올랐다.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석탄으로의 에너지 대분기를 하게 됐다. 석탄은 영국의 에너지 부양능력을 완전히 해결해 기계화와 공장, 그리고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먼저 시작하게 만들었다. 알다시피 19세기의 모든 것들은 석탄의 부양능력이 만든 것이고, 20세기의 모든 것들은 석유의 부양능력이 만든 결과다.

지금 우리가 전력부문에서 부양한계를 만난 것은 어쩌면 기회다. 전력망의 부양능력을 높이는 방법인 직류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류전환을 최초로 이루고 전력망의 부양능력 향상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다면 전 세계 시장에 근원적이며 중요한 파급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직류화는 심층기반의 변화, 즉 대분기이기 때문에 단순한 사업모델의 모색을 넘어서는 창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직류화가 무엇이기에 그럴까? 그것의 장점과 단점을 거론하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 중 한 가지만 생각해도 좋다. 그것은 직류가 같은 조건에서, 전력망의 부양능력을 3배 이상 키우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음성통신 대신 데이터 통신을 하고 통신을 3G에서 LTE로 가져가는 이유는 부양능력 때문이다. 그래야 소식을 전하는 일을 넘어 게임과 동영상과 핀테크와 증강현실과 무인자동차를 부양할 수 있다.

강력한 부양의 장점에 더해 직류는 전압이 자유롭고 주파수에 신경 쓸 일도 없다. 그래서 다양한 신재생에너지를 가진 프로슈머가 쉽게 활동할 수 있다. 전류의 흐름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음은 전기차 시대에는 필수적인 장점이다. 재난상황에서 설비의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남은 부분으로 도시의 핵심 시설에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다. 미래의 스마트도시는 직류 위에서야 가능할 것이다. 직류화를 통해 기존 전력설비는 대부분 교체되고, 새로운 디지털 전류 설비가 대신할 것이다.

그렇다면 직류화는 전력산업에 새로운 가치창출의 기회와 지속가능한 사업을 보장할 수 있는 거대한 혁명의 출발이다. 크게는 지난 120년 전력산업의 역사를 바꾸는 시발점을, 작게는 어려움을 겪는 우리 산업이 세계 시장을 향해 담대한 전진을 시작하는 대전환을 만들어 줄 것이다. 우리가 이런 대전환을 처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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