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계의 대세는 슈퍼히어로다. 과거에도 히어로물이 있었지만, 마블 스튜디오의 거대한 성공은 이 흐름에 불을 붙였다.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감독 데이빗 예이츠)은 대세에 숟가락을 얹은 작품이다. 물론 타잔은 과거에도 밀림의 영웅이었다.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타잔을 슈퍼히어로로 재탄생시켰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문명 사회로 돌아와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던 존 클레이턴(타잔)은 밀림이 위기에 처하자 다시 '영웅' 타잔이 돼 그곳으로 돌아간다.

옷을 갈아입는 대신 옷을 벗는 영웅이 있는 '레전드 오브 타잔'에는 또 다른 '유행 요소'가 들어가는데, 그건 바로 '고뇌형 히어로'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 이후 하나의 장르가 된 듯 보이기도 하는 근심 많은 영웅들은 가장 최근의 히어로물인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나 '슈퍼맨 대 배트맨'에도 등장한 바 있다.

타잔의 고민거리는 '제국주의'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밀림의 왕'의 고민은 깊지 않고, 예이츠 감독 또한 이 부분을 진지하게 다룰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타잔'(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은 정글을 떠나 영국 상원의원이자 귀족 그레이스토크 경 존 클레이턴이 돼 아내 '제인'(마고 로비)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중 벨기에 왕 레오폴드의 특사 롬(크리스토프 바츠)은 타잔을 콩고 밀림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음모를 계획하고, 이를 알리 없는 타잔은 밀림에서 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정글북' 못지 않은 수준으로 밀림과 그 안의 동물들을 구현한다. 차이가 있다면, '정글북'이 극도의 정교함을 통해 정서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데 더 집중하는 반면, '레전드 오브 타잔'은 히어로물답게 동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더 몰두한다는 점이다('망가니' 액션 등). '정글북'과 '레전드 오브 타잔'을 연달아 보고 나면 할리우드의 동물 표현 능력이 최고 레벨에서 상향 평준화에 도달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다.

액션은 볼만하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창의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관습적이고(타잔이 나무 줄기를 타는 장면은 스파이더맨을 보는 듯하다), 또 다른 어떤 부분은 과장이 심해(밀림에서 자라면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힘을 얻는다)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맨몸으로 밀림을 누비는 로망은 실현시킨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어떤 도구에도 의존하지 않고 낭떠러지에서 자유낙하하는 '아크로바틱함'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레전드 오브 타잔'은 실망스럽다. 철저히 기획된 영화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메이킹' 없이 탄생할 수 있는 영화는 없지만, 극 안에서 상업적 기획의 흔적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대표적인 설정이 타잔이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영국 귀족 백인 남성'이 아프리카 원주민의 편에 서서 서양 열강의 식민지 건설을 온몸으로 막아낸다는 '뼈대'부터가 원조 타잔 이야기에 쏟아지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 보인다.

타잔은 러닝타임 내내 아프리카 친구들, 흑인 동료와 어울리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코스프레' 하지만 이런 행동이야말로 백인남성우월주의 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발상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영화에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결국 무능한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후반부 대규모 전투신(scene)마저도 기획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타잔의 고군부투와 주변 인물들은 이 장면에 철저히 종속돼 있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한다. 게다가 이 전투 시퀀스는 2000년대 초반 세계 영화사를 새로 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그 유명한 '로한의 기마대 전투신'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무성의 해보이기도 한다. 클리셰의 남발 속에서 크리스토프 발츠와 새무얼 L 잭슨 같은 최고의 배우들은 희생당하고, 마고 로비도 매력을 상실한다.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 타잔은 조각처럼 빚어진 근육질 몸매를 뽐낸다. 이 영화가 그렇다. 마치 타잔의 '잘 만들어진'몸매처럼 '근육만 가꾸고 사상은 키우진 못해' 어설픔만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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