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제도개선-실질 대응능력 육성 ‘투트랙 전략’ 필요”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이름도 생소한 ‘안전공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 실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과학적 방법으로 찾아내 경로를 파악하고, 제거 또는 제어하는 학문이다. 김 교수는 대구 지하철사고 이후 국내 재난 및 안전관리 체계를 정립해 온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입을 통해 국내 재난·안전관리 분야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전기안전의 방향성을 들어봤다.

◆“재난·안전관리 다른 개념…어릴 때부터 안전교육 필수”

“우리나라 안전관리 수준은 상당히 낙후돼 있습니다. 선진국에 비하면 30년 이상 뒤떨어져 있죠. 이를 따라잡기 위해선 제도 개선과 함께 실질대응 능력을 키우는 투트랙 전략으로 나가야 합니다.”

김찬오 과기대 교수는 “그나마 육상 재난 분야에 대한 대응체계는 지난 10여년 동안 훈련과 매뉴얼 정립으로 국제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해상 분야는 그러지 못했다”며 “해상 재난 대응책이 부재했고, 이를 전담하는 해양수산부가 폐지와 부활을 반복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재난과 안전은 다른 개념입니다. 재난은 예측이 힘들기 때문에 사전 예방이 어렵고, 피해규모도 큽니다. 때문에 대응복구에 주력할 수밖에 없죠.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반면 안전사고는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고, 재난에 비해 피해규모도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안전관리에 소홀하면 세월호 사태처럼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죠.”

김 교수는 해상 재난 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한 원인에 대해 관련 법안들이 따로 놀다보니 전문적이고 통합적인 관리 시스템이 부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상안전법, 선박안전법, 선원법, 수난구호법 등 해상 재난에 대한 대처방안을 다룬 규정들이 서로 유기적이지 못하고, 이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발생했다”며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매뉴얼 작성, 부처간 협업 훈련, 컨트롤 타워의 전문성 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해상 재난 대응시스템 마련에 나섰고, 5년 내에는 국제적 수준의 재난대응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국내 안전관리 수준은 어떤가. 이 부분에 대해서 김 교수는 재난 분야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산업분야마다 안전을 다루는 법안이 중구난방이고, 사안마다 적용대상이 달라 시설물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가 안 되는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안전관리가 부족하고, 관리 대상에서 벗어난 사각지대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법안 통합과 종합적인 안전기준의 마련인데 부처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 안전사고로 이어진 낭떠러지 비상구”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민간의 안전의식 부족도 지적했다.

그는 “시민과 기업들의 안전불감증은 어릴 때부터 안전교육을 철저히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는 정부와 교육기관의 탓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안전사고 발생률은 34개 OECD 가입 국가 중 최고 수준이며,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률도 1위라는 수치가 이를 방증한다.

김 교수는 “정부 주도의 안전문화 운동에는 한계가 있다”며 “민간단체가 나서서 재난안전네트워크를 확대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민·관 협력을 통한 자발적인 안전문화 운동이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안전 관련 법적 근거 부재…전기안전공사의 역할 강화 필요”

김 교수는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그곳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현대건설과 대구시청 등에서 전기보안담당자·산업안전관리자·방화관리자로 일하며 풍부한 현장경험을 쌓는 등 실무와 이론을 갖춘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전기안전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보니 김 교수는 허술한 국내 전기안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김 교수는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전기안전이 가장 뒤쳐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는 익숙한 옛 기술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전기업계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국내에는 전기안전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법령이 없는 상태”라며 “일본에서 차용한 전기사업법을 안전기준으로 준용해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안전기준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다양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특히 과거 110V용 전선을 220V 환경에서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전압 차이에 따른 전선열화로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1970년대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220V 배전전압 승압사업이 시작된 이후 일본(110V)과 우리나라는 전기 사용 환경이 달라졌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아직도 일부 전기배선 공사에 과거 110V용 전선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안전기준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시대에 맞는 안전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우리가 늘 사용하는 콘센트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보통 벽면에 설치된 콘센트의 경우 구멍이 두 개다. 이는 활성선(하트선)과 중성선(뉴트럴선)으로 플러그를 연결하면 전압이 흘러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플러그를 거꾸로 연결하면 활성선과 중선선이 달라져 가전제품의 절연체가 전압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김 교수는 “이 때 온도가 높아지면서 누전과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일반 시민들은 이를 잘 모르고 있다”며 “선진국들의 경우 원천적으로 콘센트 구멍에 플러그를 거꾸로 연결할 수 없도록 만드는데 우리나라에선 이를 규정하는 안전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 교수는 안전기준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전기사업법을 준용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기사업법은 안전기준이 아니다. 안전기준은 크게 시설안전기준과 사용(관리)기준으로 나뉜다. 시설안전기준은 전기시설물에 대한 규정이며, 사용기준은 유지관리· 점검·검사에 대한 내용을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현행 법령에는 전기안전에 대한 사용기준이 없는 상태다.

전기 사업 운영과 관련된 법률로 안전 분야까지 다루다보니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한다.

“하루빨리 전기안전관리법을 제정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전기안전에 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합니다. 안전의 기본은 수칙을 만들고 준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래야 전기시설물도 제대로 관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한 것이 전기안전공사의 역할이다.

김 교수는 “전기안전공사는 설비검사에만 주력할 뿐, 시설물 사용상의 안전 확보를 위한 기준마련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법적 근거가 없는 이유도 있지만 한전과 전기안전공사간 업무 충돌과도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한전은 전기사업을 비롯해 전기시설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관리하는 데도 관여하고 있어 전기안전공사 업무와 일정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김 교수는 “전기안전공사가 안전에 대한 기준을 연구하고, 제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안전사고가 반복돼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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