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꽃
고수꽃

날씨가 따뜻해지면 텃밭은 꽃밭이 된다. 심어놓은 꽃들은 ‘이때다’하며 봉오리를 피우기 시작하고 토마토, 애호박, 가지, 심지어는 쌈 채소에서도 꽃이 피어난다.

작물들이 하루하루 쑥쑥 크는 걸 지켜보는 것도 뿌듯한 일이지만, 밭 한쪽에 피어난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도 텃밭에서 얻게되는 즐거움 중 하나다.

노들텃밭이 있는 노들섬은 아카시아가 많다. 섬 전체가 아카시아 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지금은 꽃이 지고 잎이 무성해졌지만, 아카시아가 한창 만개했을 때는 그 향기가 텃밭과의 첫인사 같은 거였다.

노들역에서 내려 한강대교를 건너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진한 아카시아 향기가 코로 훅 들어왔는데, 그 향기가 나기 시작하면 ‘아, 드디어 텃밭에 왔구나’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꽃밭에 가는 마음으로 텃밭에 갔다.

아카시아 꽃향기에 한껏 취해 텃밭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 장미다.

노들 텃밭 입구에는 붉은 장미 덩굴이 있다. 꽃잎은 핏빛처럼 선명한 빨강인데 반해 잎은 푸르디 푸른 초록이다.

장미가 드러내는 색을 보고 있으면, 신호등 앞에서 빨강과 초록을 볼 때와는 다른 기분이 든다. 차로 한복판, 녹색 신호를 기다리며 조급했던 사람도 텃밭 장미 앞에선 어쩐지 느긋하다.

‘우리 밭에 가야지’하고 걷다보면 벌써 핀 코스모스도 눈에 띈다. 여름의 입구에서 만난 코스모스는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반갑다. 어딜 가나 성격 급한 꽃은 꼭 있다.

그 중에서도 가지꽃과 고수꽃은 텃밭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다. 장미는 꽃집에 흔하고 코스모스도 가을이면 길가에서 종종 보게 되지만, 이런 꽃들은 밭에 가야만 볼 수 있다.

가지꽃은 가지를 닮은 보라색이다. 꽃잎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데 매혹적이면서도 어쩐지 위험한 느낌을 준다.

고수꽃은 줄기와 가지 끝에서 우산 형태로 피는데, 소담하고 희다. 가지꽃과는 반대로 순결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중국,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 향신료로 많이 쓰는 고수는 빈대 냄새가 난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선호하는 사람이 적다. 오죽하면 ‘고수는 빼주세요’라는 말이 여행사전마다 있을 정도. 그러나 꽃에는 ‘불호’가 따로 없다. 저마다 제 나름대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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