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REC가격 4만원 급등…"괜히 미리 계약했다" 아우성
발전5사 "계약해지 안돼"…제재조치 필요 공감 공동대응 나서
전문가들 "신재생사업 수익 불확실성이 문제, 안정화방안 필요"

영월 태양광발전단지.
영월 태양광발전단지.

◇…A씨는 저축해둔 돈과 퇴직금 등을 모아 시골 땅에 100kW급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했다. 안정적인 노후처가 될 거라는 선전 문구에 마음이 갔다. 그러나 발전소를 짓고 보니 공급인증서(REC)를 팔 데가 없었다. 온갖 인맥을 동원해 겨우 겨우 발전사와 REC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년 사이 REC 가격이 4만원이나 올랐다. 손해가 막심했다. 그는 이제 발전사에 매일 전화를 걸어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사정하는 중이다.

태양광·비태양광 REC 통합 후 REC 거래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발전사와 REC 장기 판매계약을 체결하고 싶어 애를 쓰던 태양광 사업자들이 이제는 맺은 계약도 해지해달라고 졸라대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RPS 의무공급자인 발전사들은 REC 시장 통합 후 판매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태양광사업자들의 성화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태양광 발전소를 가동하면서 REC를 판매 중인 사업자는 물론이고, 사전 판매계약을 체결한 뒤 발전소 착공을 앞두고 있는 사업자들 역시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상황이다. 발전소 규모도 10kW급 소규모부터 메가와트(MW)급 대형발전소까지 각양각색이다.

발전사 관계자는 “착공 전 사전계약을 체결한 메가와트급 태양광 발전소 3곳에서 최근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아직 발전소가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REC가 오간 것은 없지만 어쨌든 계약인 만큼 법률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이미 가동 중인 소규모 태양광발전소의 경우 계약을 해지해 달라는 곳이 200여건에 달하고 있는데, 들어보면 해지해달라는 이유도 다들 절절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장기 계약해지 요청 봇물, 왜?

일 년 전만 해도 태양광 사업자들은 발전사와 REC 장기판매계약을 맺지 못해 안달이었다. 태양광 발전소 건설량은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우는데, 발전사들이 사들이는 태양광 REC는 고정돼있다 보니 사업자들 간의 경쟁도 치열했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태양광 판매사업자 선정시장’의 경쟁률은 11.2대 1까지 치솟았다. 160MW를 모집하는 데 1800MW에 달하는 용량이 몰리면서 가격도 11만원대에서 7만원대로 급감했다.

태양광 사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REC를 팔지 못해 난리였다. 각종 인맥을 동원해 발전사 REC 구매 담당부서에 청탁을 넣고 REC를 사달라고 사정했다.

심지어는 브로커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1MW에 5000만원~1억원을 받고 REC 장기계약을 주선해줬다.

이렇게 힘들게 체결한 REC 장기계약, 이제 와서 해지해달라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REC 시장 통합 후 현물시장의 REC 가격이 훌쩍 뛰었다.

지난 3월 REC 통합시장이 개설된 후 현물시장의 REC 가격은 10만원 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7주 연속 11만원 선 위에서 머물고 있고, 최고가는 14만1000원까지 올라섰다.

쉽게 말해 작년에 장기계약을 체결한 사업자들은 REC당 7만원을 받고 REC를 팔고 있는데, 지금 현물시장에서는 REC당 11만원에 거래가 된다. REC당 4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를 한달 수익으로 계산하면 100kW급 태양광발전소를 운영하는 A씨의 경우, 현물시장에서 REC를 파는 것과 비교해 한 달에 약 65만원 손해를 보는 셈이 된다. 1년으로 치면 800만원에 달하는 돈이고, 12년까지 가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물론 태양광의 경제성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12년 뒤에는 현재 가격이 유지될 수 없겠지만, 사업자들의 관심은 지금 당장의 REC 값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발전사 신재생에너지 부서에서는 장기계약 해지에 대한 문의전화가 빗발친다. ‘어디는 해줬다는데 여기는 왜 안 해주냐’는 식의 고성도 오간다. 대부분의 태양광 사업이 대출을 끼고 있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수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발전5사 “중도해지 안돼”…공동 대응 나서

발전사들의 입장은 명확하다. 계약을 해지해줄 수 없다는 것.

태양광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는 7만원에 체결한 장기계약을 해지하고 현물시장으로 옮겨갈 경우 REC당 얻게 되는 수익이 늘어난다. 반면 발전사들로서는 싸게 계약한 REC를 버리고 다시 비싼 REC를 사야하니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해지를 해달라는 사업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온갖 눈물 나는 이유를 다 댄다”며 “그러나 한 번 계약해지를 해주면 ‘나도 해달라’고 줄줄이 이어지는 요구를 다 감당할 수가 없다. 회사 입장에선 비용이 늘어나는 일이고, 향후 국감에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REC를 주지 않는 사업자들도 있어 대책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규정으로는 계약을 파기할 경우 2년간 판매사업자 선정시장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대신 현물시장에는 참여할 수 있다. 태양광 사업자들이 장기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이유가 현물시장으로 가기위함 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계약을 파기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한전과 발전5사는 최근 회의를 열고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태양광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요구할 경우 적정 페널티를 주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계약규모에 따라 위약금을 산정해 부과하는 것과, 현물시장 참여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같은 조건을 계약서 상에 넣어 제도화하는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

발전사 관계자는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발전5사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이같은 내용들을 정부에 건의해 제도를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수익 ‘불안정’이 원인

그러나 일각에서는 REC 거래시장을 둘러싼 내홍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신재생에너지사업의 수익성을 안정화시켜야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신재생에너지사업의 수익은 계통한계가격(SMP)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판매에서 나오는데, 양쪽 모두 가격이 들쭉날쭉하다.

2년 전 130원을 호가하던 SMP는 이달 60원대로 주저 앉았고, REC 가격도 지난 2년 간 7만원~14만원까지 등락을 거듭했다. 이는 정확한 수익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지표로 작용해 은행권이 신재생에너지사업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꺼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차문환 한화큐셀코리아 대표는 최근 열린 신재생에너지 관련 포럼에서 “은행에서 태양광 사업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해줄 때는 해당 프로젝트의 매출이 안정적인지 따지는데, 현재는 태양광 사업의 수입이 변동성이 큰 SMP(계통한계가격)에 연동돼 있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실제로 은행은 기업에게 ‘모기업 보증을 가져와라, 땅을 보증해라’ 라는 식으로 추가 보증을 요구한다”며 “PF는 프로젝트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것인데, 이건 PF가 아니지 않느냐. 결국 태양광 사업에 PF가 안 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라는 정책자원을 확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것보다 20년 이상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한 연구자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투자를 촉진하려면 SMP와 REC를 합친 수익을 적정 범위 내에서 고정된 가격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수익이 조금 줄더라도 안정성을 강화하는 게 투자 확대에는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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