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직원으로 살기 참 힘듭니다. 일단 공기업이니까 공공성을 챙겨야죠. 업무를 하면서 회사 전체적으로는 이윤을 내야하고, 개인적으로는 저성과자로 퇴출되지 않기 위해 남보다 뛰어난 성과도 내야 합니다. 그 와중에 정부와 국회의 샌드백 노릇도 해야 하고요. 참 힘듭니다.”

13일 오후, 서울지방조달청 앞에서 에너지공기업의 한 노조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건물 안에서는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 방안’을 심의·의결하기위한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 방안’에는 공기업의 유사기능 통폐합, 비핵심업무 축소, 민간개방 확대, 민간시장 성숙분야 기능 축소 및 폐지, 경영 효율화 등이 담겼다. 특히 해외 자원개발사업을 추진 중인 3개 공기업은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핵심자산 위주로 자산을 구조조정하고, 민간 부문과의 협력을 강화하게 된다. 광물공사는 아예 해외자원 개발기능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 조직 축소와 인력 감축도 진행된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무리한 투자확대 및 자원가격 하락으로 부채비율이 급증’했다.

맞는 말이다. 2007년과 2015년 3개 공기업의 부채비율은 광물자원공사(103%→6905%), 석유공사(64%→453%), 가스공사(228%→32%) 순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그들만의 잘못일까.

몇 년 전만해도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의 ‘해외자원외교 성과’를 홍보하기 바빴다.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하도록 했다. 석유공사가 이명박 정부 당시 해외 자원개발사업에 투자한 18조원 중 13조원이 빚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방만하다고 칼을 빼드니 공기업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지난 국감에서 공기업들의 부실 해외사업이 질타를 받았을 때 정부 고위 인사는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사업은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공기업이 스스로 결정하고 투자할 문제다”라며 발을 뺐다. 그런데 에너지 기능조정 방안을 보니, 공기업들의 구체적인 ‘해외자원개발 개편방안’은 정부가 이달 중에 발표하겠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입장과 책임에 보는 사람도 어리둥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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