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만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시다. 희끗희끗한 생머리를 질끈 동여매기만 했는데도 인품과 품격이 배어나는데 인사를 나눈 후의 인자한 웃음은 하루를 즐겁게 해준다. 한번은 아주 조그마한 강아지를 안고 계셨다. “응, 그렇게 밖에 나가고 싶었어?”, “뭐라고? 간식도 많이 달라고? 그래, 그래, 우리 그러자!” 할머니는 강아지와 눈을 계속 마주치며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신기하게도 강아지도 할머니 말에 답이라도 하는 듯 “크으으응, 크응크응~”옹알이를 했다. 좀 더 지켜보니 강아지가 할머니의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강아지의 옹알이를 귀 기울여 듣고 해석하는 소리였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지혜라는 사자성어이자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조신영·박현찬은 저서 『경청』에서 장자의 ‘음악 소리가 텅 빈 구멍에서 흘러나온다’는 글을 예시하며, 악기나 종의 소리는 그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공명이 이루어져 좋은 소리로 들리게 되는데, 사람의 공명통은 마음이며 텅 빈 마음을 가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대화 속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고 했다.

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찰방법에는 문진이 있다. 환자의 몸 증상, 본인과 가족의 병력, 생활 패턴 등을 주의 깊게 듣는다. 이때 의사가 환자가 말하는 증상 외에도 표정과 거동까지 살피며 환자의 말을 경청하게 되면 환자와 보다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치료로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 특히 명의는 경청의 대가라고 한다. 친구들과 다투고 나서 먹은 점심이 체했다는 분, 혼전 자식들 걱정에 두통이 심해지신 분들에게 소화제나 두통약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명의인 것이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센드버그는 2008년부터 공식적인 사내 보고에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했고, 최근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도 사내 파워포인트 금지령을 내렸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이 지나치게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친다며 보여주기 위주의 끼워 맞춘 문서가 탄생되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예일대학 정치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에드워드 터프트에 따르면, 2003년 폭발 사고로 우주인 7명을 희생시킨 컬럼비아 우주왕복선의 발사 결정은 면밀한 분석 없이 보여주기 위주의 장점만 열거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에 의한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도 2010년 4월 27일자 「우리의 적은 파워포인트다(We Have Met the Enemy and He Is PowerPoint)」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파워포인트가 ‘정보 제공’이 아니라 ‘설득’에 치우쳐 듣는 사람 중심이 아닌 발표자 중심의 정보전달이라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정부는 2015년 6월 적극적인 원자력 안전정보 공개를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 주도로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했다(시행 2016.6.23.). 이를 토대로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를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설치하고 포털사이트(http;//nsic.nssc.go.kr)를 6월 중에 구축·운영하기로 했다. 이는 잘못 작성된 파워포인트 문서처럼 알리고 싶은 것만 강조해서 작성하는 일방적 정보전달 방식인 설득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마치 애견과 대화하는 할머니처럼, 환자의 말동무가 되어 병을 고치는 명의처럼, 국민과 눈높이를 같이하며 국민이 요구하는 정보가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하는 정보제공 채널이 되어야한다. 경청이란 상대의 말을 말없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깔려있는 동기나 정서까지 생각하며 이해한 바를 상대에게 확인하는 것까지 포함하듯, 원자력안전정보공개센터는 국민의 마음을 경청하는 소통 채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무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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