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드 인 차이나’하면 국내 소비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중국산은 싸구려 저질 제품으로 인식돼 온 게 사실이다.

2016년 현재의 중국은 어떠한가. 지난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7% 이상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 어느덧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양분하고 있다. 특히 제조와 전력시장을 비롯한 각종 산업분야에서 우리나라를 앞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더 이상 외면 받지 않는다.

특히 세계 1위 인구, 4위 국토를 바탕으로 한 중국의 전력시장은 ‘대륙의 스케일’에 맞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이미 세계 전기·에너지 시장의 중심에 선 중국이다.

이에 본지는 창간 52주년을 맞이해 세계최강국을 향해가는 중국 전력시장을 살펴보고, 국내 전기·에너지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고자 한다.

5월 15일 중국의 중심이자 수도인 베이징을 찾았다. 5월의 베이징 날씨는 한국의 초여름과 비슷하다. 하늘은 뿌옇지만 내리쬐는 햇볕은 더 따갑다.

베이징국제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미세먼지가 코와 눈을 강타했다. 마치 모래바람이 날리는 공사장에서 숨 쉬는 느낌이랄까. 저녁 퇴근길에는 몰려드는 자동차로 공기는 더욱 탁해진다. 뉴스로만 전해들은 베이징의 대기오염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맑아 스모그 등 미세먼지 농도가 옅은 편이라고 한다. 서울보다 교통체증도 심해 1km를 가는데 30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난개발 탓에 베이징의 대기오염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 정부의 최대 과제는 대기질 개선이다.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으로는 자동차 배출가스가 지목되고 있다. 냉·난방과 공장 가동으로 배출되는 가스도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다.

때문에 베이징에선 석유 엔진 차량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차량통제도 이뤄지고 있다. 석유 차량의 경우 면허를 잘 내주지 않아 다른 도시에서 번호판을 발급받아 베이징에서 운전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꼼수 탓에 타지 번호판을 단 자동차는 베이징에서 9시~16시까지만 통행이 가능하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5부제 통행도 시행하고 있다. 반면 전기차는 예외다. 앞으로 전기차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항을 벗어나 베이징 시내 중심가에 들어서는 동안 전기자동차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동스쿠터는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충전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전기차 수가 많진 않다. 하지만 전기차의 보급을 확대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 가까운 미래에 전기차 강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실적은 약 22만대로, 미국을 제치고 선두로 올라섰다. 내년이면 중국 전역에 50만대의 전기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동차산업 후발주자로서의 뒤처짐을 전기차시장 선점을 통해 만회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월 중국 에너지국이 발표한 전기차 인프라 증설계획에 따르면 올해 중국에는 전기충전소 2000개, 공공 충전기 10만개, 민간 충전기 86만개가 설치된다. 충전 인프라에는 5조3000억원(300억위안)이 투입된다. 이는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난 규모다. 총 투자액의 40%인 2조1000억원(120억위안)은 충전설비 건설에 들어간다.

최근 중국은 전기차·스마트그리드뿐만 아니라 친환경적인 신재생에너지 분야에도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202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5%, 2030년까진 20%로 끌어늘려 온실가스 감축에 나설 계획이다. 특히 4년 후 태양광, 풍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9%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도 제시했다.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기후변화에도 대응하며, 에너지 자원을 분산시키고 자국 내 대기오염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전력시장은 세계 1위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중국 전체 설비용량은 15억6703만W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설비용량의 16배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발전량은 5조6045억kWh, 전력사용량은 5조5500억kWh다. 산업별 전력사용량은 1차(1020억kWh), 2차(4조46억kWh), 3차(7158kWh)로 나뉜다. 주거용 전력사용량은 7276억kWh다.

중국 내 에너지믹스를 살펴보면 아직까지 화력발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 내 화력발전 설비용량은 9억9021만kW 규모다. 이어 수력(3억1937만kW), 풍력(1억2830만kW), 태양광(4158만kW), 원자력(2717만kW)이 뒤따르고 있다.

대부분 석탄화력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석탄의 발전단가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전기 1kWh당 소모되는 표준 석탄량은 평균 315g이다.

그러나 중국전력기업연합회의 양쿤 당서기는 “화력발전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며 “중국은 앞으로 더 이상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풍력발전이 태양광발전보다 비중이 더 크다. 고원지대에 바람자원이 풍부하고, 태양광 패널과 모듈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풍력발전 설비용량만으로 우리나라 전체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정도니 대륙의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다.

국내 최대 전력공기업인 한전도 중국 전력시장의 잠재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04년부터 중국 내 2번째 발전사인 대당집단과 풍력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고, 또 다른 발전사와 협력관계 구축을 추진 중이다.

조죽현 한전 북경지사장은 “1996년 북경지사를 설립한 이래 중국사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며 “중국의 양대 전망회사인 국가전력망과 남방전망공사와 매년 정기적으로 교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조 지사장은 “원자력은 청정에너지로 분류돼 2020년까지 매년 6~8호기가 건설될 예정이며, 2030년에는 중국 전역에 110개의 원전이 가동될 것”이라며 “2020년까지 수력은 3억5000kW, 풍력은 2억kW, 태양광은 1억kW, 원자력은 9000만kW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규모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문제는 중국 전려계통의 불안정성이다. 발전원이 대부분 서부 내륙에 분포돼 있어 전력수요가 큰 동부나 동북부지역으로 송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워낙 땅이 넓고, 송배전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아 송전손실률이 6.34%(2014년 기준)에 이른다. 이 같은 손실률로 풍력발전의 약 40%가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 낮은 전력품질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과 태양광 산업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호준 주중대사관 상무관은 “최근 중국은 송전제약으로 인한 전력계통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활용을 높이고 있다”며 “국가전력망공사의 경우 36MWh 규모의 ESS를 설치한 바 있고, 전력수급 안정과 효율을 비롯해 대기오염까지 줄일 수 있는 ESS사업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쿤 중국전력기업연합회 당서기 인터뷰>

“동북아 수퍼그리드 구체화할 것”

넓은 국토의 효율적 송전 위해 HVDC선로 활용

한국 전기공사협회・한전 등과 긴밀한 관계 유지

“중국전력기업연합회는 올해 동북아 국가간 전력계통을 연계하는 ‘동북아 수퍼그리드’를 구체화시킬 계획입니다. 러시아·몽골·중국·한국·일본 5개국이 전력계통 연계를 위해 1년 전부터 기술교류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전기공사협회와 한전 등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양쿤 중국전력기업연합회 당서기는 “가까운 미래에 동북아 국가들이 같은 전력계통으로 묶인다면 러시아에서 만든 전기를 일본에서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어 국가별 전력수급 해결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히 일본이나 한국처럼 에너지가 부족한 국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전력기업연합회는 중국 전력 분야의 모든 기업과 군소 협·단체들이 가입돼 있는 최대 조직이다. 회원사만 해도 화웨이와 국가전력망공사 등 민간기업과 공기업을 합쳐 1000여곳이 넘는다. 양쿤 당서기는 중국전력기업연합회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1년 넘게 조직을 이끌어 오고 있다.

그는 “연합회는 발전과 전력망 비용책정에서부터 기술연구·인력육성·신용관리·안전관리 등 중국 전력산업의 각 부문을 주관하고 있다”며 “한국의 전기협회처럼 전력업계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성장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양쿤 당서기는 “동북아 수퍼 그리드 현실화를 위해선 대륙을 연결하는 HVDC(초고압직류송전) 사업이 중요하다”며 “현재 중국에선 넓은 국토의 효율적인 전력송전을 위해 20곳 이상에서 HVDC 선로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HVDC는 직류방식으로 먼 거리를 전력손실 없이 송전하는 기술이다. 현재 중국에선 400kV(1640km), 500kV(1만1875km), 600kV(1336km), 800kV(1만132km) 등 HVDC 활용도가 높다.

특히 중국은 1100kV의 초초고압직류송전 인프라 설치에도 성공하며, HVDC 기술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르고 있다.

양쿤 당서기는 “신장-안후이(3400km)에 이어 최근 운남-광동을 잇는 2000km 거리를 1100kV HVDC로 구축했다”며 “송전선로를 건설하는데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HVDC의 구축으로 동북아를 연결하면 러시아나 몽골, 중국 등 발전원가가 저렴한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할 수 있어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일 것”이라며 “향후 5개국이 동북아 수퍼그리드 상용화를 위해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중국 대당집단 왕기영 전략기획부 주임

"2020년 청정에너지 설비비율 33%까지"

중국 5대 발전사 중 하나인 대당집단의 발전설비용량은 1억2717만kW에 달한다. 한국의 전체 발전설비용량(약 1억kW)을 넘어선다. 규모가 워낙 차이가 나다보니 에너지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연결고리는 거의 없다. 17일 중국 북경시에 위치한 대당집단 본사에서 만난 왕기영 전략기획부 주임(처장급)도 한국의 전력기자재 기업 중 하는 곳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른다”고 일축했다.

왕 주임은 1982년 하북성 전력회사에서 기술직으로 근무를 시작해 발전소 소장을 거쳐 대당집단 본사의 운영방안과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가장 낮은 직책부터 시작한만큼 다양한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 왕 주임으로부터 대당집단의 발전사업 현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대당집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중국 5대 발전사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직원수는 20만명, 자산총액은 7358억위안이다. 2010년부터는 6년 연속 세계 500대 기업에 선정됐다. 발전설비 비중은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석탄화력이 8845만kW(70%), 수력이 2290만(18%), 풍력발전이 1190만kW(9%), 가스가 325만kW(2.6%), 원자력이 143만kW, 태양광이 67만kW다. 청정에너지 설비용량 비중은 31% 정도된다. 중국 31개성 모든 곳에서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태양광 비중이 굉장히 적은데 이유는?

“태양광은 풍력보다 경제성이 상당히 낮다. 기술개발로 기자재 단가가 낮아지면 태양광도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치 추진하는 13차 5개년 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청정에너지의 비중을 화석에너지의 1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대외적으로 약속했다. 선언적인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당집단은 화력발전 비중이 대부분인데 청정에너지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청정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당신에너지’라는 자회사를 2010년에 만들었다. 2015년 하반기에는 2020년까지 청정에너지의 설비비율을 33%까지 끌어올리고 2025년까지 투자액의 60%를 청정에너지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대당신에너지는 한전과 합자회사를 세우고 대규모 풍력발전사업을 하고 있다.

“2005년부터 한전과 풍력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노르웨이도 함께 사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전이 가장 일처리 속도가 빨랐다. 현재까지 같이 한 프로젝트는 20개로 중국에서 바람이 잘 부는 감숙성, 요녕성, 내몽고 등 세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체 발전량은 127억6700만kWh, 수익은 14억5100만위안을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발전사별로 경영평가를 받는다. 중국에서는 발전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중국 국영업체를 관리하는 공무원자산관리위원회가 1년에 한번씩 평가를 한다. A, B, C등급으로 나뉘는데 대당집단은 매년 A급을 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은 자산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자산의 증가치를 보고, 매출액 등을 평가한다. A급을 받으면 직원들의 복지가 향상되지만 등급이 떨어지면 감봉조치된다.”

중국 북경=위대용 기자 w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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