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안전에 기본 두고 미래기술력 키우기 주력"

경기도 파주의 세진테크(대표 맹명석)는 장기불황과 출혈경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수배전반 시장에서 놀라운 성장률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해외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100%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하면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최근 업계에서 가장 ‘핫’한 업체 중 하나지만, 세진테크도 시작은 미약했다.

맹명석 세진테크 대표는 “강원도 영월에서 공고 전기과를 나왔고, 집안 형편 상 대학까지 진학하기는 어려웠다”며 “고등학교 3학년에 산업현장에 뛰어들었고, 온갖 잡일부터 시작하며 일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1992년 맹 대표가 처음 취업한 곳은 작은 수배전반 업체였다.

도장과 페인트칠, 설계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매우 고된 일이었지만 게으름피우지 않고 노력했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당시 맹 대표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가 터지며 상황이 바뀌었다. 모두가 힘든 시기였고, 맹 대표가 다니던 업체도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회사의 부도로 졸지에 실업자가 된 맹 대표는 다른 업체에 취업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맹 대표는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는 나 자신이 커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배전반 업체에서 할 일은 다 해봤고, 한번 도전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29에 뛰쳐나와 30에 회사를 세웠다. 자금 여력은 당연히 없었지만, 젊은 패기에 몸으로, 발로 뛰었다”고 전했다.

창업자금 5000만원으로 회사를 설립한 맹 대표는 먼저 하도급부터 시작했다. 동종업계 일을 받아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다 운 좋게 5000만원 정도 되는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 몇 안 되는 직원들과 함께 신이 나서 일했지만, 곧 ‘날벼락’이 떨어졌다. 건물 부도로 돈을 한푼도 못 받는 처지가 된 것. 당장 세진테크도 연쇄적으로 쓰러질 상황이었다.

맹 대표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무작정 은행에 달려갔고, 지인들의 도움을 청했다. 이자가 부담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젊기에 극복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맹 대표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남들이 1000원짜리 할 때 900원짜리를 했다. 야근, 철야 작업도 수시로 했다”며 “조금씩이지만 갚으려고 노력했고, 이런 노력이 통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큰 공부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맹 대표는 이후 사업방식도 바꿨다. 동종업계 하도급 만으로는 이윤을 내기 힘들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맹 대표는 틈새시장을 생각했다. 당시 협력업체를 모집하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 쪽으로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다.

사업 주관사에 무작정 연락을 취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찾아갔다. 작은 일이라도 달라 했다.

맹 대표는 “노력은 통했다. 일을 따낼 수 있었다. 등록된 업체 중 한곳에서 품질을 보증해준 덕이었다”며 “힘든 가운데에도 품질과 안전만은 기본이라는 고집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후 세진테크는 북한 쪽 사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품질·안전을 기본으로 하는 경영전략이 인정받아 사업영역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맹 대표가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한 배전반 맞춤형 공장·사옥을 짓고, 보금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베트남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는 국내 한 대기업과 800만달러 규모의 배전반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 등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맹 대표는 “사업 시작 이후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 많았지만, 기본에 충실하려는 자세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위기를 헤쳐올 수 있었다”며 “앞으로는 보다 멀리 내다보고 기술력을 키워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맹명석 세진테크 대표는 다음 인터뷰 대상으로 동 부스바 등 금속가공 전문업체 고려금속공업의 이영모 대표를 추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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