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주 기초전력연구원 에너지밸리분원장 겸 목포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문채주 기초전력연구원 에너지밸리분원장 겸 목포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

드디어 4.13총선이 끝났다. 여야 희비가 엇갈리면서 많기도 많은 사연들이 만들어지고 화제가 되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논쟁거리가 됐다. 20대 국회가 시작되면 달라질거라는 기대와 더불어 어려운 경제에 대한 무거운 현실이 직장인들에게 더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요즈음 산업계의 주제는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모아지고 있다. 철강과 조선의 거점도시인 거제의 경우 6월 이후가 되면 약 2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네 식구의 가장이 실직을 하게 되면 8만여명이 고통에 시달리게 되고 지역경제는 침체를 벗어날 수가 없다.

문득 10여 년 전 풍력논문 발표를 위해 덴마크를 방문한 것이 생각났다. 인어상 근처에 공장이 보여서 둘러보니 공장내부는 비어 있고 시설관리 직원에게 확인한 결과 예전에 선박을 만드는 공장이며 일본과 한국의 조선산업 독주에 따라 수주가 어려워 폐업한 것을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현재 우리나라 조선산업 실정과 유사한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돌고 돌아 우리나라가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전력산업은 크게 발전, 송전, 배전 그리고 수요처인 공장, 건물, 가정 등의 부하로 구성된다. 발전은 원자력, 화력, 수력 등 전통적인 대규모 발전소에서 송배전 선로를 통해 공급하는 것이 지금까지 전력공급체계이다. 최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확산되면서 소규모 발전원이 자리 잡게 됐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파리협정’이 탄생하면서 세계의 에너지공급체계가 이 분산전원과 에너지 효율향상으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다. 이 협정은 추진 과정에서 어마마한 규모의 에너지 시장이 새로 열린다는 전망에 따라 세계 에너지산업의 구도를 바꾸는 거대한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동안 정보통신기술 분야가 중심이 돼 세계시장을 선도하며 먹거리를 만들어왔지만 미국, 유럽과 중국 등과 격차가 줄어들어 새로운 시장창출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제 다른 분야와 결합한 융복합산업으로 그 돌파구를 만들고 있다. 그중 가장 유망한 분야가 바로 정보통신기술과 에너지가 결합한 스마트그리드이며, 최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고 있는 에너지신산업의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 주말 필자는 인사동거리와 삼청동 카페거리를 다니면서 거리 요소마다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보았다. 공예작품을 수상한 예술인이 만들어낸 ‘수상한 그녀들의 공예길’, 이를 위한 주말 차량통행금지구역설정, 그동안 보지 못한 예술퍼포먼스 등 예술의 거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넘쳐 나고 있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북촌 한옥마을, 식당의 그릇도 한국의 멋을 나타내는 유기제품 사용 등 하드웨어가 변모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소프트웨어 만큼 하드웨어도 진화한 것이다. 에너지산업의 하드웨어는 포화상태 이르러 있고 에너지 트렌드 변화와 글로벌 기후변화는 우리에게도 큰 기회로 다가오고 있는데 에너지산업에 걸맞은 소프트웨어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모두들 힘들어 한다. 최근 에너지 공기업의 글로벌 리딩기업인 한전 조환익 사장이 쓴 책 ‘전력투구’에서 그 방향성을 읽을 수 있었다. 국가적 명제인 새로운 국부창출을 위해 에너지신산업 분야로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것이 줄거리로 에너지산업을 정보통신기술과 잘 혼합해 새로운 산업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 단지를 선도적으로 구축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 기업 등 우리 기업들도 새롭게 펼쳐지는 에너지 신시장에 뛰어들어 그 성과도 하나둘씩 얻고 있다. 선도적인 마이크로그리드는 섬, 산업단지, 캠퍼스, 건물 등 적용분야가 다양하고, 전기차를 비롯한 새로운 에너지프로슈머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 실증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분야인 에너지신산업 창출은 연구된 사업모델의 시험, 실증, 상용화가 단계적으로 수행돼야 비로소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기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실증시험장비의 구축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한전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R&D 실증단지 조성이 이런저런 이유로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하드웨어적인 진화를 미루고 있는 것이고 현장에 연구자를 집중 배치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방식도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리딩기업의 새로운 가치창조를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한 신개념의 산업이 육성되어야 하므로 ‘전력투구’와 거리를 좁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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