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

최근 모 기업 대표가 건물관리인의 뺨을 때린 사건이 뉴스에 보도됐다. 재벌 2세의 항공사승무원 폭행, 소비자의 백화점 직원무릎 꿇리기 등 기업 소유자와 소비자의 갑질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갑질로 감정노동자의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객센터 직원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폭로하며 자살했고, 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더 많을 것임에 틀림없다.

감정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과도한 친절을 강요받을 뿐 아니라 거짓‧과장민원을 제기하는 악성 민원인이나 소비자들의 협박, 폭행, 성희롱 등을 감내하면서 웃으며 서비스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기업은 감정노동 근로자들의 고충을 알면서도 민원 발생이 회사 이미지 손실로 이어질까 두려워 감정노동자 보호에 소극적이다. 감정노동자의 30%는 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부에서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제도적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사업주에게 고객업무 관련 스트레스, 고객 등에 의한 폭언, 폭력, 괴롭힘 등을 예방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 의무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감정노동자가 고객 등의 폭언, 폭력, 괴롭힘 등으로 인하여 건강장해가 발생한 경우 업무전환, 휴식공간 및 휴식시간 연장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감정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친절을 강요하는 기업의 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도 무늬만 친절할 뿐 소비자들의 억울함이나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 기업의 대응시스템에 화나는 소비자들이 줄지 않고 있다. 화가난 소비자들의 과잉행동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분석 및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값싼 친절보다 정확하고 합리적인 업무처리를 원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소비자의 클레임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체계 마련이 우선되어야 하고, 반복적인 클레임에 대한 분석과 시스템 평가가 시급하다.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기업들은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서비스 제공 노력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감정노동자이면서 블랙컨슈머가 될 수 있다. 악성 클레임이나 감정노동은 모든 사람 관계에서 일어난다. 주변의 삶에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고, 감정노동자가 블랙컨슈머가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 했던가. 내가 주장하는 것은 소비자권리 행사이고 남이 주장하는 권리는 감정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 나는 얼마전 블랙컨슈머의 행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 고객센터 상담사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를 수행한 바 있다. 당시 심층면접 내용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담사들의 주장은 일반 소비자보다 오히려 고객을 접하는 직업에 있는 근로자들이 악성 클레임 제기자가 많다는 것이었다. 심하게 시집살이를 한 사람이 또 다시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감정노동 문제는 한 명의 개인이나 하나의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감정노동 문제는 오랜시간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사회문화적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감정노동자들도 내 가족, 이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감정노동자도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들은 소비자 개인의 부당한 요구가 다른 소비자에게 피해가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문제 제기는 합리적으로, 목소리는 부드럽게 하며, 서로 잘못했을 때는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소비자, 근로자 등 범시민사회가 함께 블랙컨슈머와 감정노동의 문제를 예방·해결하도록 협력해야 한다. 블랙컨슈머 및 감정노동문제는 끊임없는 공론화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과제이다. 소비자, 근로자, 기업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상생의 사회가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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